![조희대 대법원과 무너진 '서면주의'‥해외에서 재판기록 심의? [데스크의 눈]](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5/11/15/yh_20251115-3.jpg)
■ 엑셀Excel은 안된다, 종이로 출력해라.
2017년 1월, 눈에 띄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한 범죄자가 14억 건이 넘는 개인정보, 그러니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를 팔다가 붙잡혔는데, 검찰이 이 데이터를 엑셀 프로그램으로 범죄일람표를 만들어 1심 재판부에 CD로 제출한 겁니다. 2심인 고등법원에선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항소를 기각했고, 그대로라면 피고인은 징역 2년을 선고받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파기환송'했습니다. 엑셀Excel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검사가 공소사실을 전자문서 형태로 작성한 후, 종이문서로 출력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고, "이런 형태의 공소제기를 허용하는 규정이 없고, 전자적 형태의 문서는 '서면', 즉 '종이'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1, 2심 판사들에게도 쓴소리를 했는데 "공소제기 방식과 공소사실 특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면서 후배 재판관들을 꾸짖었습니다.
형사소송 공소장에서, 엑셀Excel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오로지 종이만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공소제기시 종이 서류만 인정하는 걸 사법부에선 '서면주의'라고 합니다.
2016년 12월에도 비슷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웹하드에 불법 동영상 3만2천여건을 배포해 7억원 넘는 부당이익을 얻은 피고인이 1, 2심 모두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범행 횟수가 61만건이 넘어, 종이로 출력하면 수만페이지에 달해, 당시 검사는 부득이 엑셀로 표를 만들어 CD에 담아 제출하겠다고 건의했고, 재판부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해 엑셀 파일로 제출해도 좋다고 허락해 줬습니다.
복사 좀 해 본 분들은 알지만, A4용지로 수만 페이지를 출력한다면 중간에 몇 번씩 '용지걸림'이 발생하겠죠. 실제로 사건 기록 출력과 복사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검사가 재판 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해서 뉴스에 보도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이 공소제기에 대해 서면주의를 택한 건, 법원의 심판 대상을 명백하게 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함"이라며, 전자 문서를 허용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엑셀 파일을 인정할 수 없다고,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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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문서의 효력을 인정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2017년 개인정보 판결에선 "이런 형태의 공소제기를 허용하는 규정이 없고, 전자적 형태의 문서는 '서면', 즉 '종이'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고, 2016년 웹하드 판결에선 "형사소송법이 공소 제기에 관해 서면주의와 엄격한 요식행위를 채용한 것은 심판의 대상을 서면에 명확하게 기재해 둠으로써 법원의 심판 대상을 명백하게 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록 표현은 다르지만 전자문서는 법적 효력이 없으며 종이 문서만 사건 기록으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대법원이 형사소송법에 한해선 종이 서류만 인정한다는 건데, 뭔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형사 재판이니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자문서의 법적 효력을 인정한 법률이나 규정이 없기 때문에 엑셀파일을 '서면'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도 꼭 유의할 부분입니다.
그렇게 우리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에서의 '서면주의'를 엄격하게 고수해 왔습니다. 좀 더 편하게, 효율적으로 재판을 하려던 검사와 판사들은 대법원의 일갈에 위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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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의 엄격한 '서면주의', 왜?
우리 사법부가 형사소송법에서 답답하리만큼 '서면주의'를 고집하는 건, 법원의 심판 대상을 명확하게 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대법원 선고 2015도3682)
검사가 법원에 종이로 된 공소장을 제출해야 비로소 소송이 시작된다는 의미로, 예를 들어, 검사가 관할 법원에 전화를 걸어서 공소제기를 하거나 판사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 공소제기를 해봐야 효력이 없다는 겁니다.
오로지 종이만 인정되기 때문에, 범죄 사안이 심각한 경우엔 공소장이 A4용지로 수십만장에 이르기도 하고, 이를 법원에 송달하기 위해 트럭에 실어 나르기도 합니다. (한 때 '트럭 기소'라는 신조어도 있었습니다.)
수십만장의 서류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검사들도 고충이 크겠지만, 이걸 받아서 검토해야 하는 법원도 갑갑하긴 매한가지입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의 근간은 PC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판사들 역시 사건 기록을 복사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스멀스멀 사건 기록을 복사할 때 PDF 파일을 만들어 PC에서 열람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습니다. 덕분에 재판관들은 휴일에 무거운 종이 서류를 들고 집에 가지 않아도, 편리하게 자택에서 사건 기록을 열람하고 검토할 수 있게 됐습니다. 몇년전 과로사 했다는 판사들이 잇따라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는데,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는 법조인에게 여쭤보니, 요즘 판사들은 종이로도 보고 스캔본도 본다고 합니다. 종이만 있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편리해진 셈입니다.
그런데 검사들은 '서면주의'를 반드시 지켜야 하고 판사들도 '서면주의'를 엄수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생각해 보면, PDF로 사건기록을 검토해도 괜찮은 건가?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분명히 Excel은 안된다고 했는데‥ PDF는 다른가? 허용 규정이 생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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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소송에서도 전자문서, 효력을 얻다
다행히 형사소송에서도 전자문서가 효력을 얻게 됐습니다. 2021년 10월 19일 「형사사법절차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이 제정, 공포됐습니다. 줄여서 형사절차전자문서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법은 충분한 사전 테스트와 상호 점검, 시범 운영기간 확보를 위해 곧바로 발효되지 않았고, 올해 10월 10일 이후부터 적용됐습니다.
이제 형사소송에서도 변호인이나 검사 모두 번거로운 종이 기록 대신 노트북이나 테블릿PC만 들고 법정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재명 대선 후보의 파기 환송 판결이 내려질 당시엔, 이 법이 적용되지 않았고, 그래서 '서면주의'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겁니다.
■ 스캔본 문서의 법적 효력은?
그래서 과연 파기환송 당시, 대법원이 '서면주의' 원칙을 지켰는지 엄격히 짚어봐야 합니다.
Excel은 누구나 수정 가능하지만, PDF는 문서 특성상 수정이 어려우니, 격무에 시달리는 재판관들이 편리한 스캔 문서로 사건 기록을 심리하고 판결을 내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최근엔 PDF 역시 얼마든지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간단한 검색으로 찾을 수 있어, Excel이나 PDF나 위변조 가능성엔 별 차이가 없습니다.
누군가 법원 전산망을 해킹했다는 전제하에, Excel이든 PDF든 마음만 먹으면 수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조희대 대법원과 무너진 '서면주의'‥해외에서 재판기록 심의? [데스크의 눈]](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5/11/15/yh_20251115-11_1.jpg)
[전현희/국회 법제사법위원 (더불어민주당, 2025년 10월 15일 대법원 국정감사)]
"법적 효력이 없는 스캔본 기록을 살려 전합 회부 당시부터 읽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법적 효력 없는 문서를 읽은 것이고 그것은 불법이다."
지난 5월 1일, 대통령 선거를 한달 앞두고 대법원이 이재명 당시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한 판결을 놓고, 대법관들의 스캔본 심리에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 겁니다.
당시 국정감사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처음엔 스캔본으로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법적 효력은 종이 기록에만 있다고 말하는 등 오락가락 답변을 내놨습니다.
[천대엽/법원행정처장 (2025년 10월 15일 대법원 국정감사)]
"이 사건의 효력이 있는 이제 원본 형사사건에서 기록은 이제 종이 기록입니다. (스캔 기록은) 법적인 효력이 부여되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이제 편의적 보조적인 부수적인 장치라는 말씀만‥"
대선 후보의 출마 자격을 중단시킬 수 있는 중대한 판결을, 효력이 없는 스캔본 문서로 심리하고 파기환송했다면 대법원이 엄격히 고수해 온 '서면주의'를 스스로 위배한 것이 됩니다.
![조희대 대법원과 무너진 '서면주의'‥해외에서 재판기록 심의? [데스크의 눈]](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5/11/15/yh_20251115-10_1.jpg)
법관이 기록을 검토하는 방법은 다양한 방법이 있고,
① 종이기록을 복사하여 사본으로 검토하는 방법,
② 시스템에 저장된 원심 판결서나 증인신문조서 파일을 열람하여 출력본(사본)으로 보는 방법,
③ 출력하지 않고 컴퓨터화면으로 보는 방법
모두 가능하고, 종래 많은 법관들이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을 검토해 왔음
이라는 반박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정확히는 대법원이 전현희 의원실에 제공한 겁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공개한 <형사소송에서의 전자사본문서 이용 등에 관한 업무처리지침> 어디에도, 재판관이 형사사건기록을 복사한 전자문서로 심리를 하고 판결을 해도 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 법원사무관이 엄격히 전자사본화(스캔)를 관리하고 검사, 피고인, 법정대리인, 변호인 등이 그 문서를 열람할 수 있다는 내용만 다루고 있습니다.
즉 재판관을 위한 업무지침이 아니라, 복사 때문에 몇시간씩 번호표를 뽑고 법원 복사실에서 기다려야 하는 민원인들을 위해, 편리하고 신속한 재판을 하기 위해 만든 업무지침입니다.
대법원이 고민 끝에 궁색한 '복사실' 업무지침을 반박자료로 내놨다는 건, 대법관이 심리할 때 스캔문서를 활용해도 효력이 인정된다는 명확한 법 규정이 없다는 걸 반증합니다.
법의 불비不備 상태에서, ① ② ③처럼 법관들은 종이로 보기도, 파일 출력본으로 보기도, 화면으로 보기도 했던 겁니다. 법을 지켰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관행이었다는 말입니다.
■ 검사는 안되지만 판사는 괜찮다? 대법원이 무너뜨린 '서면주의'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파기환송 판결 심의중에 권영준, 신숙희 대법관 두 명은 13일 동안 해외출장 중이었습니다.
두 대법관이 도대체 어떻게 심의를 했냐고 묻자, "출장 중에도 자료를 받아 검토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는 대법원의 입장이 나왔습니다. 아마 PDF로 봤을 겁니다.
검사들한테는 판결을 뒤집으면서까지 '서면주의'를 강조한 대법원이 정작 자신들은 서면주의를 지키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서면주의는 검사만 지켜야 하고, 판사는 안 지켜도 괜찮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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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스캔본으로 사건을 심리하고 판결했으니, 스캔본으로 해도 괜찮다는 주장을 하려면 효율적 재판을 위해 엑셀 파일로 공소장을 제출했던 검사들에게도 관대했어야 합니다.
유죄 판결을 파기 환송할 정도로 대법원이 엄격하게 강조했던 '서면주의'.
그렇다면 대법관들 역시 그 원칙을 지켰어야 합니다. 특히, 유력한 대선 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할 정도의 판결을 내리는 과정이었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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