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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기소·짜맞추기 수사'‥트럼프 2기 미국 법무부의 민낯 [WorldNow]

'보복 기소·짜맞추기 수사'‥트럼프 2기 미국 법무부의 민낯 [WorldNow]
입력 2025-11-30 13:49 | 수정 2025-11-3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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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복 기소·짜맞추기 수사'‥트럼프 2기 미국 법무부의 민낯 [WorldNow]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법정에서 망신을 당했습니다. 자신의 정적으로 꼽히던 인사들의 형사 처벌을 밀어붙였지만 법원은 오히려 기소 자체가 잘못됐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적 기소 촉구하다 망신당한 트럼프

    지난 24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연방지방법원은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과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습니다. 사건을 심리한 캐머런 맥가윈 커리 판사는 기소를 주도한 버지니아 동부연방검찰청의 린지 할리건 검사장이 위법하게 임명됐다며, 일단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보복 기소·짜맞추기 수사'‥트럼프 2기 미국 법무부의 민낯 [WorldNow]
    여기엔 좀 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지난 1월 트럼프 2기 취임 뒤 버지니아 동부검찰청에서 기존 검사장이 사임하자, 경력이 풍부한 에릭 시버트 검사를 임시 검사장으로 임명합니다. 그런데 지난 9월, 돌연 시버트 검사장이 물러나고 트럼프 변호인단으로 활약했던 할리건 검사장이 다시 검사장 대행으로 임명됩니다. 재판부는 이 과정 자체가 위법하다고 봤습니다.

    연방법은 검사장 자리가 비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120일간 임시 검사를 임명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하지만, 120일이 지나면 임시 임명자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새로 임명하는 권한은 행정부가 아닌 법원으로 넘어갑니다. 권력 기관의 상호 견제를 위해 연방 검사장은 상원 인준 절차를 밟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임시 임명 기간 동안 의회의 검증을 받고, 만약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법원으로부터 연장 승인을 받으라는 취지 입니다. 그런데 만약 계속해서 대통령이 임시 임명 권한을 갖는다면 120일짜리 임기를 반복하면서 의회 인준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전임자인 시버트 검사장이 임시로 임명됐던 만큼 120일 시한은 이미 5월에 끝났습니다. 실제 시버트 전 검사장도 법원에 의해 한차례 임명이 연장됐습니다. 따라서 후임자 임명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커리 판사는 그런데도 법무부가 할리건을 새로 임명한 것 자체가 위법하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할리건 검사장은 공소 제기 권한 자체가 없었던 만큼 무자격자인 그녀가 기소한 사건도 무효인 것입니다. 뒤늦게 법무부가 그녀를 특별 검사로 임명하는 '꼼수'를 썼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수사 경험 전무' 보험전문가를 검사장 임명

    법적인 논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할리건의 검사장 임명은 이례적이었습니다. 변호사 출신인 할리건은 2021년 플로리다의 골프 클럽에서 트럼프와 처음 인사를 나눴고 당시 대형 로펌이 변호를 거부해 어려움을 겪던 트럼프의 변호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플로리다주 변호사 자격을 얻은 뒤로 그녀는 줄곧 보험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왔습니다. 트럼프의 변호인단 합류 전까지 주 단위가 아닌 연방법원 사건은 단 세 건에만 이름을 올렸습니다. 검사 경험이 없으니 형사 기소 경험 자체도 전무했습니다. 버지니아 동부검찰청은 국방부와 CIA 본부가 위치해 있어 중요 사건이 많은 곳으로 꼽힙니다. 주택 보험 청구를 맡던 그녀가 중대 범죄나 국가안보 관련 사건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일 수밖에 없습니다.
    '보복 기소·짜맞추기 수사'‥트럼프 2기 미국 법무부의 민낯 [WorldNow]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그녀를 검사장에 보임한 데에는 당연히 내막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진두지휘하게 된 동부검찰청은 최고 권력자인 트럼프와 관계된 민감한 사건을 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코미 전 국장의 의회 위증 혐의 수사였습니다. 코미 전 국장은 2016년 대선 시기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의 연계 의혹을 수사하다 트럼프 1기 초기 해임됐습니다. 트럼프는 직후부터 코미 전 국장이 기밀 정보를 언론에 유출했다고 공격해왔습니다. 하지만 2019년 법무부 감찰관실의 대대적 조사 끝에 이는 무혐의로 끝났습니다. 민감한 정보를 규정을 어기고 언론에 흘린 사실은 있지만 기밀로 분류할 만한 정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5년 전 의회 증언까지 탈탈 털어 정적 기소

    그러자 이번에는 5년 전 의회에서, '내부 직원이 취재에 응하도록 허용한 적 없다고 한 발언'이 위증이라는 혐의를 들이댔습니다. 의회 조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도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판례상 코미 전 국장의 유죄 판결을 받아내려면 고의로 의회에서 잘못된 증언을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설령 코미 전 국장이 거짓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기억이 그렇다"거나 "질문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말하면 빠져나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전임인 시버트 검사장과 베테랑 검사들은 가망 없는 사건으로 보고 기소에 반대했습니다. 윗선의 압력에도 시버트 검사장이 버티자, 팸 본디 법무장관은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그를 사임시켰습니다. 그 자리에 곧바로 트럼프 변호인을 대행으로 임명했습니다. 누가 봐도 사건 청부용 임명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공연하게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시버트를 자신이 "해고했다"고 순순히 알렸습니다. 이어 "할리건은 정말 좋은 변호사이고 (팸 본디 법무장관) 당신을 아주 좋아한다"며 공개적으로 임명을 요구했습니다. 또 "정의는 지금 당장 실현돼야 한다"며 코미 전 국장 등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기소도 촉구했습니다. 모두 이번 법원 결정문에 고스란히 실렸습니다. 요청 받은 대로 할리건 검사장은 코미 전 국장을 기소했고, 이어서 트럼프의 또다른 정적인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제임스 장관은 2022년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그룹이 자산가치를 허위로 부풀린 사실을 적발한 일로 트럼프의 표적이 됐습니다. 보복 기소였습니다.
    '보복 기소·짜맞추기 수사'‥트럼프 2기 미국 법무부의 민낯 [WorldNow]
    '짜맞추기' 수사 폭로‥양심고백 나선 검사들

    코미 전 국장 사건은 트럼프 2기 법치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입니다. 법무부 소속 검사와 변호사들 60명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부의 난맥상을 전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해 폭력을 행사한 1.6 폭동 수사팀이 1차 표적이 됐습니다. 대대적으로 축출됐습니다. 저연차 변호사들을 먼저 해임한 데 이어 고위직 12명은 보직 해임 뒤 체포 영장을 검토하는 초급 사건 담당 부서나 이민 사건 담당 부서로 강등시켰습니다. 한 검사는 "우리를 뺀 상태에서 업무 방향을 쉽게 변경하려고 한 것 같다"며 "유능한 사람을 빼낸 효과는 즉각적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우리 편 감싸기는 노골적이었습니다. 트럼프 정책에 보조를 맞춘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에 대한 부패 혐의 기소를 취소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공직자부패범죄 담당 부서는 과장부터 3명의 부과장까지 줄 사퇴로 저항했습니다. 결국 퇴임을 앞둔 고참 변호사가 일종의 '총대를 메고' 기소 취소 결정에 서명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보복 기소·짜맞추기 수사'‥트럼프 2기 미국 법무부의 민낯 [WorldNow]
    법무부에서 16년째 변호사로 근무했던 에레즈 루베니는 올초 이민 소송을 담당하는 법무부 부서의 부국장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798년 전시를 겨냥해 만들어진 적성국 국민법에 따라 이민자들을 추방하는 정책에 반대했다 해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트럼프 정부는 특별기 편으로 갱단으로 의심되는 베네수엘라 국적자들을 실어 쫓아냈습니다. 법원이 임시 명령으로 이를 중단시켰지만 상사로부터 "엿이나 먹으라 하라"며 법원 명령을 무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실수로 추방한 이를 발견하고도 법원에 거짓으로 해명하라는 요구까지 있었다고 폭로했습니다. 자칫 변호사 자격 자체를 잃을 수 있는 일입니다.

    트럼프 2기, 위기에 빠진 미국 법치주의

    부당한 지시가 반복되면서 연방 정부 상대 소송을 방어하는 부서에선 변호사 1백10명 중 75명 이상이 법무부를 떠났습니다. 원칙에 따라 수사하고 혐의가 있으면 기소한다는 기본적인 원칙도 무너졌습니다. 인권국 소속 한 검사는 반유대주의를 이유로 캘리포니아 대학들을 조사하라는 지시에선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30일 안에 조사를 마치고 정당화 메모를 제출하라'고 지시를 받았는데, 정당화 메모는 법 위반이 있다는 결론을 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을 통과한 형사 사건을, 법원에서 공소 기각 결정으로 종결시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오스틴 사라트 앰허스트칼리지 법학 교수는 가디언 기고문에서 "(트럼프의 법무부는) 트럼프에 복무하면서 판사가 '안 된다'고 말할 용기를 낼 때까지 법 한계를 밀어붙이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정치적 반대파를 표적삼고 줄 서지 않는 이들에게 복수를 꾀"하는 등 검찰권을 정치화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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