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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M] 북한이 인테리어에 꽂힌 몇 가지 이유

[인싸M] 북한이 인테리어에 꽂힌 몇 가지 이유
입력 2025-12-13 08:53 | 수정 2025-12-1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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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싸M] 북한이 인테리어에 꽂힌 몇 가지 이유

    북한 조선중앙TV에서 방송 중인 '살림집 내부 꾸리기' 편집물 캡처

    최근 북한 조선중앙TV에 전에 볼 수 없었던 프로그램이 등장했습니다.

    '살림집 내부 꾸리기'라는 제목의 이 시리즈 물은 인공조명이나 공간의 합리적 이용, 식물 배치 등 매번 주제를 달리해 가며 인테리어와 관련된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수직 방향의 벽지 무늬는 높이가 실지보다 높게 느껴지게 하고, 수평 방향의 무늬는 방 안이 넓게 느껴지게 한다'는 등 우리에게는 상식 수준의 인테리어 기본이 주 내용입니다.

    경우에 따라 벽면 마감 방법이나 마감건재 사용법 등 다소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기도 합니다.

    북한 방송의 특성상 한번 나왔던 프로그램을 몇 번이고 다시 트는 경우도 많은데 11월 이후 한 달이 훌쩍 넘도록 거의 매일 방영되고 있습니다.
    [인싸M] 북한이 인테리어에 꽂힌 몇 가지 이유

    이달 초 김정은 위원장의 지방공업공장 현지지도 모습

    최고 지도자가 강조하는 인테리어

    김정은 위원장은 이달 초 준공을 앞둔 지방공업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건설 과정에서 마감 시공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건설의 질적 평가는 마감 시공에 달려 있다며 마감 시공의 전문성과 정교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제시했다'고 북한 매체는 전합니다.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마감재를 잘 만들어야 한다 지시하고 인테리어를 강조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게 다소 의아할 수 있지만 김 위원장의 '마감재 강조'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5년에도 건축 기·공구 전시회장을 방문해 건설 자재와 관련한 과업을 제시했고, 2017년에도 건축자재 전시장을 시찰하며 마감건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건설 설비와 자재들을 다른 나라에서 사다 쓸 생각을 하지 말고 우리 식으로 창안 제작하기 위한 사업을 줄기차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독려했습니다.

    그 후로도 비슷한 발언들이 계속 이어졌는데 이쯤 되면 자체적인 힘으로 건물을 짓고 인테리어를 그럴 듯하게 하는 것이 오래된 숙원 사업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잘 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자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두 군데 모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인싸M] 북한이 인테리어에 꽂힌 몇 가지 이유

    최근 진행된 북한의 한 농촌 마을 새집들이 모습으로 요즘 북한 방송에는 농촌 마을 새집들이 관련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살림집 건설은 최대 역점사업

    2021년 초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해마다 1만 세대씩, 5년간 평양에 5만 세대의 살림집을 새로 건설하겠다고 밝힌 북한은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전합니다.

    2021년 3월 착공된 송신·송화지구를 시작으로 화성지구 1,2,3단계 공사가 순차적으로 진행됐고 마지막 단계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이와 별도로 보통강변의 경루동 주택 단지 등 다른 곳에도 새로운 살림집들이 대거 들어섰습니다.

    농촌 살림집 공사도 함께 진행돼 지난 4년 동안 1900여 개의 농촌 마을이 새 살림집으로 단장됐다고 북한 매체는 전합니다.

    한 마을에 25가구만 계산해도 평양에 들어선 것과 비슷한 수치가 되는데 북한 방송에 나오는 화면을 보면 최소 50가구가 넘는 마을이 대부분인 만큼 농촌에 들어선 새 살림집은 평양보다 훨씬 많을 거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요즘도 북한 매체에는 거의 날마다 각 단위별 새집들이 행사가 보도됩니다.

    살림집 제공은 북한이 대외적으로 가장 자랑하는 부분이자 최대 역점 사업이기도 합니다.

    '살림집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한다'고 선전하며 주민들을 독려하고 새 살림집을 받은 주민들이 춤을 추며 충성을 다짐하는 모습이 연일 북한 매체에 나옵니다.
    [인싸M] 북한이 인테리어에 꽂힌 몇 가지 이유

    최근 새로 입주한 북한의 살림집 내부

    건물만 공급하고 인테리어는 입주자가

    '북한은 공사 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곳곳에서 새 살림집이 건설되고 주민들에게 제공하지만 일각에서는 겉만 그럴 듯해 보일 뿐 집 내부는 제대로 갖춰지지 못해 살만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는 했습니다.

    실제 북한 뉴스나 드라마에 나오는 살림집 내부를 보면 우리나라 1980년대쯤 장면인 것처럼 허름한 벽지와 장판에다 별 가구도 없이 대강의 살림살이를 배치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여러 차례 공언한 내용, '인민들이 문명화된 삶을 누리게 하겠다'는 것과는 괴리가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북한이 지금 살림집 꾸리기를 거듭 강조하는 건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됩니다.

    북한에선 주민들에게 살림집을 제공할 때 건물만 내어주고 인테리어는 입주자가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선물집처럼 기본 인테리어가 된 상태로 제공하는 살림집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적입니다.

    그래서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그럴 듯해 보이는 살림집을 위해 주민들에게 인테리어와 관련된 내용을 주입하고 학습시킬 필요가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북한 주민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몰래 시청한 뒤 한국식 인테리어를 따라 하는 경향도 있었는데 한류의 물을 빼기 위해 하나의 표준을 제시하며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확립하기 위한 조치라는 전문가 분석도 있습니다.

    물론 북한 매체가 제시하는 인테리어를 보면 어떤 부분이 자본주의적이고 또 어떤 부분이 사회주의 생활양식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나라 보통 집들의 인테리어와 비슷하지만 주민들에게 인테리어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하나의 표준을 제시하는 듯한 인상은 분명히 나타납니다.
    [인싸M] 북한이 인테리어에 꽂힌 몇 가지 이유

    천리마 타일 공장에서 타일을 생산하고 있는 모습

    자급자족의 길

    북한이 최근 인테리어에 집중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과거 주로 수입에 의존했던 것과 다르게 인테리어에 사용되는 각종 자재를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측면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지방발전 20x10' 정책을 발표하며 향후 10년간 매년 20개 시군에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해 문화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 정책에 따라 현재 건설되고 있는 공장은 식료품이나 일용품, 의류 공장 등이 주류를 이루긴 하지만 건설과 관련된 공장들도 대거 공정을 현대화하거나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평양 건재공장, 천리마 건재종합공장, 남포의 대안 친선유리공장 등 각지 공장에서 건설 인테리어 관련 자재를 생산하며 최근의 건설 붐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질적으로 어떤 수준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자재를 해외에서 어렵게 구입해 인테리어를 하던 때와는 물량 면에서 차이가 큽니다.

    이와 별도로 북한 매체에서는 각 도별로 건재생산기지 건설이 진행 중이라며 선진적인 건재생산기술을 도입해 지방 건설에 필요한 질 좋은 마감건재를 자체 생산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향후 물량은 더 한층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인싸M] 북한이 인테리어에 꽂힌 몇 가지 이유

    합리적인 방 선정 방법을 다룬 '살림집 내부 꾸리기' 편집물

    가시적 성과 극대화

    건설은 대북제재 속에서도 북한이 그나마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군대를 동원한다거나 돌격대를 동원해 집중 투입하면 짧은 시간에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볼 수 있습니다.

    풍부한 지하자원 덕에 철근이나 시멘트 등의 자재는 해외에서 들여오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조달 가능하고, 이제 인테리어 관련 자재나 마감건재도 국산화를 시도하면서 북한의 건설 역량은 더 커진 셈입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당국의 입장에선 그럴 듯한 살림집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 만큼 치적을 자랑하기에 좋은 게 없습니다.

    내년 초로 예정된 노동당 제9차 대회를 앞두고 북한은 요즘 각계의 성과를 부각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건설 분야는 북한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역점 사업 중 하나인 만큼 관련 성과도 떠들썩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가시적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살림집 꾸리기'라는 프로그램으로 대변되는 인테리어 열풍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뉴스인사이트팀 김필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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