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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이덕영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입력 2026-01-23 10:02 | 수정 2026-01-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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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비행기에서 바라본 그린란드 풍경

    미국-나토의 대충돌, 그린란드를 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력 동원도 선택지에 있다며 그린란드 병합을 요구하던 와중인 지난 13일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 도착했습니다.

    미국과 나토, 유럽이 충돌하며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중심지가 된 그린란드에서 당사자인 그린란드 주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올 들어 갑작스럽게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의 야욕이 본격화된 이후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그린란드에 발을 디뎠습니다.

    공항에서 가장 눈에 띈 풍경은 많은 외신 기자들이었습니다.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그리스 공영 ERT 뉴스의 베테랑 외교전문기자인 파니스

    긴장된 표정으로 카메라와 장비를 짊어진 그들의 모습은 국제정치의 중심지로 떠오른 그린란드의 현재를 실감하게 했습니다.

    곧바로 시내로 이동해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그린란드 주민들의 속마음

    미국에 대한 공포와 분노.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느낀 첫 감정이었습니다.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인터뷰에 응한 그린란드 주민

    "비현실적이고 무서워요. 미국이 정말로 그린란드를 차지한다면 우리 가족은 이곳을 떠날 겁니다."

    "트럼프가 2019년에 처음으로 그린란드를 사고 싶다고 했을 때 농담인 줄 알았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정말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정말 너무 힘들어요. 우리의 일상이 무너지고 있어요."

    "그린란드에 덴마크 군인 수백 명이 있긴 하지만 미국이 정말로 쳐들어온다면 막을 방법이 없어요. 사람들은 항복할 겁니다. 트럼프가 정신 차려서 그린란드를 점령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던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 그린란드, 미국의 위협은 악몽이었습니다.

    그리고 악몽은 분노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트럼프는 독재자예요. 그는 민주주의와 그린란드 사람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인터뷰에 응한 그린란드 주민

    그린란드 전통 수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그녀의 말에는 정중하지만 날 선 분노가 담겨 있었습니다.

    당신은 얼마인가요? 우리는 상품이 아니에요

    특히 그린란드를 돈 주고 사겠다는, 주민들에게 현금을 나눠주겠단 미국식 발상에 주민들은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습니다.

    "당신의 가치는 얼마인가요? 내가 당신을 살 수 있나요? 돈으로 가치를 따지는 건 우리의 가치관에 맞지 않아요."

    "우리는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에요. 사람에게 가격을 매기는 건 잘못된 겁니다."

    그린란드는 독립국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오랜 세월 덴마크의 식민지였고, 지금은 덴마크로부터 외교·국방을 뺀 자치권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덴마크의 통치가 이상적이었던 건 아닙니다.

    그린란드 원주민 자녀들은 덴마크 본토로 보내져 강제로 덴마크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들은 그린란드와 덴마크, 양쪽 모두에서 결국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누크 시내에 게양된 그린란드 깃발

    그린란드 원주민 인구를 억제하기 위해 여성들의 몸에 몰래 피임 기구를 삽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린란드 주민들은 미국이 아닌 덴마크에 남길 바라는 걸까요.

    미국이 아닌, 그린란드만의 삶의 방식, 문화 지킬 것

    현재 그린란드는 재정의 대부분을 덴마크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습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같은 복지 혜택도 주어집니다.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인터뷰에 응한 그린란드 학생들

    갈등도 있었지만 덴마크와의 사이에 이룬 현재의 균형을 깨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역사가 그린란드의 미래가 될 거라는 불안도 있습니다.

    "미국이 우리를 식민지화하거나 광물 자원을 빼앗아 갈 거라고 생각해요."

    "미국이 점령한 다른 원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봤어요. 그래서 무서워요."

    미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지키고 싶다고 말합니다.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그린란드 누크 피요르드

    "우리는 자연과 매우 가까이 살며, 사냥과 낚시를 하고 돌아다니면서 항상 자연 속에 있습니다. 미국에 병합된다면 모든 것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뀔 거에요."

    "그린란드의 모든 것은 그린란드 사람들의 소유입니다. 그린란드에는 사유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린란드를 함께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이 나라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고 좋은 곳들을 민영화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린란드 사람들은 그 혜택에서 제외될 겁니다."

    "미국 문화가 우리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걸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 그린란드인으로 우리 자신을 유지하고 우리의 문화를 보존하며 우리가 좋아하는 가치관에 따라 살고 싶어요."

    동맹의 변심을 지켜보는 건 악몽

    미국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미국에 적대적인 건 아닙니다.

    오히려 든든한 동맹으로서 미국에 대한 신뢰는 깊었습니다.

    그린란드로 가기 전 들렀던,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인터뷰에 응한 덴마크 시민

    인터뷰를 청한 기자와 들뜬 표정으로 셀카를 찍던,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페터슨도 그린란드 주민들처럼 현재 상황을 악몽으로 표현했습니다.

    "가까운 동맹이 있었는데 더이상 그렇지 않다는 걸 매일 보는 건 악몽 같아요."

    안타깝다는 표현을 반복하던 그의 말에는 동맹이 적국이 될 수 있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대한 낭패감이 묻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선을 넘을 경우에 대한 질문에는 분명하게 답했습니다.

    "덴마크의 청년으로서 군대에 입대해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 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상황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미국이 그린란드를 침공한다면 전 군대에 갈 겁니다."

    가장 중요한 동맹 미국을 위해 무엇이든 했던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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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에 응한 덴마크 시민

    왜 이렇게까지 무리한 압박을 가하는 건지 답답함을 토로하는 시민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을 도왔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우리는 군인을 파견했고 지원했습니다."

    "지금 미국과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그들은 이미 가질 수 있어요. 트럼프는 원하는 만큼 그린란드에 미군 병력을 보유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계속해서 그린란드에 기지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린란드에서의 활동 범위를 얼마든지 더 확대할 수도 있어요."

    미군 언제나 환영‥하지만 식민지는 거부

    그린란드에서 미국의 군사적 역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건 그린란드 주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은 원한다면 그린란드 어디든 군사기지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린란드에 17개의 미군 기지가 건설됐습니다. 하지만 미국 스스로 군대를 철수시켰어요. 이제 기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어요."

    "트럼프가 미국과 전 세계를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면 군대를 이끌고 다시 돌아오는 걸 환영합니다. 언제나 환영합니다. 덴마크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거든요."

    실제로 1951년 미국과 덴마크는 그린란드에 미군의 영구적 주둔을 허용하는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 협정은 사실상 무한대로 미군의 활동을 보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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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그린란드 미군 기지를 방문한 밴스 부통령

    북극 안보를 위해 꼭 그린란드가 필요하다는 트럼프의 주장.

    그린란드 안에 골든돔을 설치하고, 미군 기지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걸로 보이는 트럼프와 나토의 타협안이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미 트럼프와 미국은 그린란드에서 군사활동을 제한 없이, 주민들의 눈치 볼 것도 없이 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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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란드 누크에 위치한 덴마크 합동 북극 사령부

    달라지는 게 있다면 미군 기지 부지를 미국 영토로 삼겠다는 것 정도겠죠.

    그린란드에는 중국, 러시아가 없다

    나토는 트럼프와의 합의를 설명하며 중국과 러시아가 그린란드에 경제적 거점을 갖지 못하게 할 거란 말도 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도 그린란드는 트럼프의 걱정처럼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그린란드 출신 토종 기업인으로 자수성가한 야콥슨 씨.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인터뷰 중인 그린란드 기업인 야콥슨 씨

    그린란드 바다에서 관광보트 사업을 하는 그의 배에는 덴마크 국왕과 총리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 그린란드 경제에 대해 잘 아는 그는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특히 그린란드는 이미 중국 기업의 투자 시도를 거부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그린란드의 여러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지원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우리가 국제공항을 건설하려고 했을 때, 어떻게든 자금을 조달해야 했습니다. 중국이 관심을 보였지만 우리는 다른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중국은 몇몇 광산 개발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지만 지금은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현재 중국은 그린란드 경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중국의 그린란드 투자는 그린란드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중국과 연계된 그린란드의 산업이 한가지 있다고는 했습니다.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그린란드 누크항

    "중국은 그린란드에서 생선을 수입합니다. 어업은 그린란드의 주요 산업입니다. 우리는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생선을 판매합니다."

    광산 개발 프로젝트 지원사업을 하는 예프 씨도 같은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러시아인은 여기에 없어요. 중국인들은 여기에 있죠. 하지만 대부분 대학에서 와서 기상 관측소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린란드 개발에 투자된 중국 자본의 비율은 0%입니다. 아마 없을 겁니다. 그린란드 개발에는 주로 호주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캐나다 출신이 참여하고 있어요."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광산 개발 컨설턴트 예프 씨

    세계 2위 희토류 매장량‥하지만 돈이 될까?

    예프 씨를 만난 김에 그린란드의 광산 개발 현황에 대해서도 물어봤습니다.

    핵심 광물자원 확보는 트럼프가 그린란드 병합을 주장하며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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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란드 지질조사국의 광물 자원 매장(추정) 현황 지도

    특히 중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막강한 무기로 휘두르고 있는 희토류가 핵심입니다.

    그린란드에는 중국 다음으로 많은 세계 2위 수준의 희토류가 매장돼 있는 걸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이 수치가 아직 추정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빙하가 녹으면서 맨땅이 드러나 광산 개발이 점점 수월해지고 있는 것 같지만 본격적인 채굴에 들어가기에는 여전히 난관이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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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크 앞바다에 떠 있는 빙하 조각

    "자원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항구를 직접 건설해야 하고 발전소도 직접 지어야 합니다. 마치 작은 도시를 만드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희토류 채굴과 정제, 그리고 수출까지 모든 과정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천만 달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돈을 잃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투자금은 사라질 겁니다. 실제로 다음해까지 탐사를 계속할 만큼 충분한 채굴량을 얻는 탐사는 5,000번 중 1번밖에 되지 않거든요."

    어렵게 희토류 원석을 채굴하는 데 성공해도 끝이 아닙니다.

    "희토류 원석 가격이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그걸 가공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희토류 정제 공장들이 모두 중국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린란드에 광물 정제 시설을 짓는 건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겠죠."

    결국 돌고돌아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며 동맹국을 협박하며 트럼프가 내세운 명분 가운데 어느 것도 현실에 부합하지도, 현실성이 있지도 않은 현실.

    "군인들이 옵니다‥방이 없어요"

    그린란드에 머무는 며칠 동안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만 고조돼 갔습니다.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호텔 로비의 덴마크 군인들

    덴마크 본토에서 파견된 군병력은 밤마다 호텔 로비로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항공편 결항으로 예정과 달리 며칠 더 누크에 머물러야 했는데 시내 호텔방이 동이 나 빈방을 겨우 구했을 정도였습니다.

    군병력이 군기지가 아닌 민간 호텔에 머무는 이유는 미처 듣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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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크 앞바다를 순찰 중인 덴마크 군함

    시내 어디에서든 내려 보이는 누크 앞바다에는 군함 한 척이 교대로 순찰활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언덕 위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누크 공항 활주로에는 덴마크와 프랑스군 병력을 실은 수송기들이 부지런히 오갔습니다.
    "미군 언제든 환영"‥동맹에 칼 꽂은 미국 [그린란드 취재기]

    누크 공항에 착륙한 프랑스군 수송기

    깨져버린 신뢰‥80년 동맹의 미래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북극해 감시를 위한 연합훈련을 벌인다는 덴마크 국방부의 공식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긴 어려웠습니다.가장 믿었던 동맹을 향해 싹튼 불신과 분노.

    80년이 넘은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은 그렇게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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