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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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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예산 막히자 "사법부 예산 독립" 개헌까지 언급하는 판사들 [서초동M본부]

송년회 예산 막히자 "사법부 예산 독립" 개헌까지 언급하는 판사들 [서초동M본부]
입력 2026-05-16 08:13 | 수정 2026-05-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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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년회 예산 막히자 "사법부 예산 독립" 개헌까지 언급하는 판사들 [서초동M본부]
    ■ 법원에 등장한 '50만원 제한'


    시작은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가 법관대표회의를 앞두고 법원 내부망에 올린 글이었습니다.

    "기재부가 1회당 50만 원을 초과하는 비용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해, 법관 워크숍, 체육대회 등 전체 규모 행사 예산 마련이 곤란하게 됐다"며 "상당히 충격적"이라고 적었습니다.

    최근 달라진 법원 분위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부터 법원행정처에서 비용을 지출할 때 주의해달라고 각 법원에 본격적으로 요청하면서, 송년회 등 연말 행사를 여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법원 살림을 꾸려나가는 수석부장들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도 재차 행정처의 준수 요구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이 판사는 평소 행정부의 사법부 예산에 대한 관여가 "세부 항목까지 미치고 있어 부당하다"고도 했습니다. 동의하는 다른 판사들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판사들은 지난달 법관대표회의 정기회의에서는 해당 사안을 지적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을 깎아내리는 언사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한 법관대표는 "어떤 전문위원 1인의 의견에 따라 법원에서 워크숍, 세미나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이 상황 자체가 굉장히 통탄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국회가 잘 모르고 정한 것을 따라야 하냐는 불만이 비칩니다. 사법부 예산을 정부로부터 받고, 국회가 감시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이 판사는 행정부의 사법부 예산편성권과 관련해 "헌법을 개정해야 된다는 논의는 예전부터 수십 년 동안 계속되어 온 것으로 안다"며 개헌을 두고 사법부의 예산 독립을 위해 행정처에서도 준비하는 게 있는지 묻기까지 했습니다.
    송년회 예산 막히자 "사법부 예산 독립" 개헌까지 언급하는 판사들 [서초동M본부]
    ■ 매년 경고받고도 "간섭 부당"


    줄어든 송년회 예산에 대한 불만은 사실 사법부 예산에 대한 판사들의 잠재된 불만 중 일부가 터져나온 겁니다.

    회의에 참석한 법원행정처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복리후생비 비목에 속하는 대법원 소속 실무연구회 예산을 사용목적에 맞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말, 26년도 예산을 편성할 당시에도) 법원행정처에서 예산 항목의 용도에 부합하게 집행하겠다는 약속을 해 예산이 삭감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국회 회의록에는 대법원이 기획재정부 집행지침에서 정하고 있는 복리후생비 용도를 어겨, 직원 워크숍, 세미나, 체육행사 등에서 총 1억 4980만 원을 집행했다는 국회 측의 지적이 남아있습니다. (2025.10.9. 법제사법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 재작년도, 그 이전 해도 대법원은 비슷한 지적을 마주했습니다.

    재정당국의 예산 편성·집행지침은 복리후생비를 어떤 용도로 쓸 수 있는지 엄격히 규정합니다. '맞춤형 복지'와 직원 생일 축하금, 세종시 등 혁신도시로 이주할 때 받는 지원금에만 사용하라고 합니다. 잔액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50만 원이라는 기준 금액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산 집행지침은 건당 50만 원 이상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는 경우 상대방의 소속과 이름을 증빙서류에 기재하도록 합니다. 다른 국가기관 모두 따르는 원칙입니다. 국민이 낸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정한 기준입니다. 그런데 법원 내부에서는 반복된 지적에도 예산 통제 자체가 부당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송년회 예산 막히자 "사법부 예산 독립" 개헌까지 언급하는 판사들 [서초동M본부]
    ■ 법관사회의 친목과 50만원 넘는 송년회비의 관계는?


    요즘 법원에서는 서로서로 함께 밥을 먹는 문화가 많이 시들해졌습니다. 만나 모이는 일도 줄었습니다. 지방 법원의 경우 원격 근무로 인해 요일마다 해당 법원에 남은 법관들이 들쭉날쭉해, 모두 모인 저녁식사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기수 차이도 이유가 됩니다. 수도권 어느 한 지원의 경우 애초에 부장판사와 배석판사가 따로 밥을 먹는 문화가 정착했다고 합니다.

    달라진 풍경 속 판사들도 고민이 많습니다. 어느 고등법원 판사는, 합의부의 경우 정해진 시간 외에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통해 심리 중인 사건에 대해 의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사건 관련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나누는 것이 법관 개인이 지는 심적 부담을 덜고, 건전한 논의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입니다.

    격무에 시달리는 형사부 법관의 경우 심리상담 프로그램 등 자체적으로 마련한 지원 제도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판사들은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싫어, 그런 공식적인 제도를 이용하기 꺼린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런 경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의 존재가 더욱 소중할 것입니다.

    그래서 송년회나 워크숍 같은 행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일까요. 하지만 국회의 지적은 판사들이 아예 서로 만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법부에 특히 더 냉정한 기준을 들이댄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상 사법부 역시 다른 국가기관과 같은 기준 아래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일부 판사들은 그 통제 자체를 사법 독립 침해와 같은 선에 놓곤 합니다. 하지만 사법 독립은 판사가 외부의 압력 없이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할 수 있도록 하는 가치입니다. 예산 집행 감시조차 받지 않을 수 있는 방패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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