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로에서 스티커까지, 그들의 '최소한'에 붙은 벌금 [서초동M본부]](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6/05/23/ggm_20260523_26.jpg)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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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스티커를 붙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 (2023.2.13)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게 함께 살자. 오세훈 서울시장 UN 탈시설가이드라인 준수!"
지난 2023년 2월 13일 오전 8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은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 벽면과 기둥 빈틈과 바닥에 이 스티커를 수백 장 붙였습니다. 이들은 왜 스티커를 붙였을까요.
■ 세 번의 약속, 반복된 추락사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시간을 좀 더 과거로 돌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1999년,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떨어져 1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2001년에는 4호선 오이도역에서 리프트가 또 추락해 장애인 부부가 숨졌습니다. 이듬해인 2002년, 5호선 발산역에서 장애인이 또 목숨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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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15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똑같은 약속을 반복했습니다. 2017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역에서 장애인이 또 떨어졌고, 또 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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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기한은 이미 지났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서울 지하철 역사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전장연이 요구하는 '1역사 1동선'이 갖춰지지 않은 곳들이 남아 있습니다. 한남역, 외대앞역, 관악역‥ 심지어 남영역처럼 장애인용 리프트마저 없어 역사에 접근조차 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 2021년 말부터 다시 지하철 시위에 나섰습니다. 이번엔 선로가 아니었습니다. 휠체어 바퀴를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에 밀어 넣어 운행을 막는 방식이었습니다. 월요일 출근 시간대를 골랐습니다. 지하철 운행이 한 시간, 두 시간씩 지연됐고, 그 때마다 출근길 시민들의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2023년 2월, 삼각지역에 스티커가 붙었습니다. 출근길을 방해한다는 비난이 쏟아지던 와중 전장연은 선로 점거도, 전동차 막기도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스티커였습니다. 스티커에 '오세훈 서울시장'의 이름이 들어간 건, 전·현임 시장들이 지키지 않고 넘긴 세 번의 약속 이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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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심이 던진 질문들
검찰은 지난 2024년 1월, 전장연의 박경석·권달주 대표와 문애린 활동가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재물손괴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스티커를 부착하고 스프레이를 분사한 사실은 명백하다"고 밝히면서도, 재물손괴죄 성립의 핵심 요건인 '효용 저해'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건물 내벽 및 바닥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측이 주장한 '승객 이동 피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스티커가 역사 내 표지판을 가리지 않는 위치에 붙어 있었던 데다가, 이동 방해는 "스티커를 제거하면서 발생하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거였습니다. 1심 재판부는 "바닥이 미끄러워 위험하다"는 주장도 기각했습니다. "스티커가 부착된 승강장은 지하철역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장소이고, 스티커를 제거할 겨를도 없이 젖을 위험이 있었다는 사정도 찾을 수 없다"며 일축했습니다.
■ 2심은 무엇을 보았나
2심 재판부는 승강장 기능을 1심과 다르게 봤습니다. 스티커가 표지판을 직접 가리지는 않았더라도, 수백 장을 도배하듯이 붙인 상황에서는 이용객들이 안내표지 위치를 찾는 데 "상당한 불편"을 겪었을 것이라고 판단이었습니다. 승강장 미관이 훼손된 정도도 상당하다고 봤습니다. '간접적 불편 초래'도 효용 저해에 해당한다고 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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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이 붙인 스티커와 분사한 스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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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와 스프레이 제거 작업
2심은 또 다른 사실도 짚었습니다. 당시 승강장에 "역사 내 시설물 설치(천막 등)는 금지되어 있으며, 관계법령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이 이미 걸려있었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그 현수막을 보고도 스티커를 붙이고 래커를 뿌렸고, 시위가 끝난 뒤 자발적으로 스티커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 재판부 "다른 합법적 수단 강구하지 않아"
유죄 판단과 별개로, 법원이 더 자세히 따진 쟁점도 있었습니다. 범죄가 성립하더라도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사정, 즉 '정당행위' 여부입니다.
형법 20조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정당행위로 인정받으려면 다섯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합니다.
①행위의 목적·동기의 정당성
②수단·방법의 상당성
③보호이익과 침해이익의 법익균형성
④긴급성
⑤보충성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가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아니하는 현실을 알리고 이를 규탄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는 점과 "표현의 자유를 널리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은 인정했습니다. 첫 번째 관문인 목적의 정당성은 통과한 겁니다.
그러나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음을 뜻하는 '보충성'에서 걸렸는데요. 재판부는 "다른 합법적인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 보지 않고 굳이 위와 같이 수백 장의 스티커를 벽면과 바닥에 빼곡히 부착하였어야만 할 긴급성이나 불가피성, 상당성이나 보충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 "최소한의 저항 수단도 벌금이라면‥"
장애인들이 지하철 선로에서 시위를 시작한 건 2002년입니다. 이들은 선로를 점거했고, 쇠사슬로 몸을 묶었습니다. 이후 20년간 기자회견, 집회, 국회 앞 1인 시위, 정치인과의 면담 요청 등을 이어갔습니다. 휠체어 바퀴로 전동차를 막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2심은 원상복구에 든 인력과 시간을 중요하게 봤는데, 이에 대해 한 전장연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청소 비용이 1,500만 원이 나왔다고 하는데,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그것보다는 우선하는 가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법원이 대한민국의 법적 정의를 말하는 공간이라면, 어떤 권리가 우선해야 되는지에 대해 정의롭게 판결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전장연 박경석 대표도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최소한의 저항할 수 있는 수단마저도 벌금의 방식이 됐다면, 대한민국 사회가 기본적인 이동할 권리를 오랜 기간 차별해 왔음에도 그 법적 책임을 과연 질 수 있겠는가. 그에 대한 답은 내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판결로 확정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형사 판결입니다. 박경석 대표는 벌금 300만 원, 권달주 대표와 문애린 활동가는 각각 100만 원의 전과 기록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스티커 수백 장을 붙여 안내 기능에 간접적 불편을 초래한 행위가 재물손괴에 해당하며, 목적의 정당성만으로는 상당성·법익균형성·긴급성·보충성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판단이 대법원을 통해 확정됐습니다.
2002년, 장애인들은 처음 지하철 선로로 내려갔습니다. 20년이 지난 2023년 이들은 스티커를 들었고, 이는 대법원에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으로 확정됐습니다.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들이 있습니다. 세 명의 시장이 약속했고, 세 번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강구했어야 한다는 '다른 합법적 수단'은 이제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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