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도 못 읽겠다는 알파벳 판결문‥내란범도 A, B, C [서초동M본부]](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6/05/30/ggm_20260530_1.jpg)
■ 내란 판결문의 수많은 알파벳
'피고인 E의 소집 지시를 받은 국무위원 등이 대통령실 5층 대접견실로 모이고 있었는데, 피고인 F을 비롯하여 HF장관 HG, DX장관 DY, HH장관 HI, GW GX, GY장관 GZ, CI원장 CJ, HA 겸 DV장관 DW, HJ실장 HK, HL실장 CH, HM장관 HN, HO장관 HP이 도착하였고, 2024. 12. 3. 22:16경 HQ장관 HR가 도착함으로써 국무회의 구성원 11명이 모이게 되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 12·3 내란 사태 핵심 인물들의 내란 혐의 1심 판결문 일부입니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되십니까? 원래의 판결문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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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1심 판결문 일부
위 상황 뒤로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고작 2분가량 진행된 '하자 있는' 국무회의가 이어집니다. 재현되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 장면이지만, 알파벳에 가려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조차 없는 암호문으로 기록됐습니다.
■ 비실명화 예외 있어야
왜 하필 알파벳일까요?
대법원이 재판예규를 통해 비실명화 기준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주민번호, 연락처, 계좌번호, 신용카드번호 등 금융 정보는 물론 판결문상 성명과 명칭은 원칙적으로 모두 비실명 처리됩니다. 알파벳을 사용하도록, 또 가려야 할 정보가 많은 경우 두 개까지 붙여 쓸 수 있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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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서 등의 열람 및 복사를 위한 비실명 처리 기준
판사들은 법원 내부 시스템을 통해 등록된 판결문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실명화 조치를 거치지 않은 판본입니다. 법원행정처에 근무하거나 공보판사를 맡는 등 사법행정 업무를 경험하지 않는 한, 익명 판결문에서 오는 불편함을 겪는 일이 드뭅니다. 그래서 종종 사건 당사자들이 낸 기록 등에서 익명 판결문을 맞닥뜨릴 때 놀란다고 합니다. 어느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과거에 관여했던 사건이었는데도 이를 알아차리는 데 한참 걸렸다"고도 했습니다.
법원은 이미 예외를 만들어 왔습니다.
일반인이 사본을 받아볼 수 있는 판결문은 확정된 형사 사건과 민사 사건입니다. 그런데 12·3 내란 사태의 경우, 서울중앙지법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1심 판결문을 홈페이지에 게시했습니다. 다른 미확정 형사 판결문들도 '주요 판결'이라는 이유로 여럿 올려져 있습니다. 무죄 추정 원칙,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들며 꺼렸던 공개 자체도 사실은 법원의 재량 영역에 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실명화 기준 또한 일률적 원칙으로 적용할 것인지, 사건에 따라 예외를 둘 것인지도 논의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알파벳 판결문으로 바꾸는 데 매년 수십억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법원 등기소 한 곳이 나옵니다. 이 건물에 '판결문 비실명화 사업소'가 있습니다. 전국 법원의 재판부가 선고를 마치고 등록한 판결문이 모입니다. 1차로 먼저 프로그램을 거칩니다. 인명과 지명, 주민번호, 주소 등이 자동으로 바뀝니다. 2차로는 사람이 직접 검수합니다. 외부 업체와 계약을 맺어, 직원들이 일일이 판결문을 뜯어보며 추가 비식별 처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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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익명화 절차
비용 절감 차원으로만 본다면 합리적인 설명입니다. 요즘같이 고도화된 인공지능을 누구나 손쉽게 쓰는 때에, 법원 역시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와 함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행정처 내부에서는 적어도 하급심에서 상급심까지 부여한 알파벳을 동일하게 하는 게 필요하지 않느냐는 제안도 있었다고 합니다. 1심에서 A였던 인물은 2심에서도 A인 식입니다.
하지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비실명화 기준 자체에 대한 논의가 우선이지 않을까요.
■ 거꾸로 가는 사법부
판결문은 사법부가 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했는지를 보여주는 공적 기록입니다. 헌법상 재판 공개 원칙의 실현은, 물리적 공간인 법원에 직접 와서 재판과 선고를 보고 들을 수 있게 해주는 데 그치지만은 않아야 합니다.
법원 내부에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특히 형량과 같이 판사의 재량이 보다 허용되는 영역에 관해, 일명 '판사 프로파일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어느 판사가 범죄의 종류나 피고인의 유형에 따라 형의 무겁고 가벼움을 달리한다는 소문은, 예전부터 변호사들 사이 알음알음 돌았습니다. 그 소문을 측정 가능한 수치로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 사법정책연구원이 연 세미나에서 한 발표자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형사 피고인이든, 민사 사건 원고이든 재판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공개된 판결문을 바탕으로 한 프로파일링 서비스가 이용자들의 '재판부 쇼핑'으로 이어질지 의문이다. … 같은 법원에 근무하는 법관들이 같은 경향을 갖는 것도 아니다. 현재 실무상 당사자의 신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판부가 타 재판부로의 사건이송을 쉽게 결정하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김구열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일반인이 알파벳 판결문이 아닌 실명 판결문을 열람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 있습니다. 경기 고양 법원도서관입니다. 필기구나 각종 전자기구는 반입이 금지되고 사건번호만 적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법원에 문제 제기가 이뤄지자, 대법원에서는 아예 이 제도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합니다. 담당자에 대한 면책 조항이 생겨야 하는 것은 맞지만, 공개 확대 흐름과는 상반됩니다.
![판사들도 못 읽겠다는 알파벳 판결문‥내란범도 A, B, C [서초동M본부]](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6/05/30/ggm_20260530_5.jpg)
행정소송 제기 관련하여 기자회견 하는 참여연대 (2026.4.7)
헌법 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판(公判)'의 앞 글자 '公'은 '공개(公開)'의 앞 글자이기도 하죠. 알파벳 비실명화 예규는 '재판 공개'라는 헌법 원칙을 지키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노출이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수단이지 헌법에 앞서는 규정은 아닙니다.
볼 수 있는 판결문의 범위는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개된 판결문이 정작 읽히지 않는다면 과연 공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대로라면 내란 우두머리 재판의 확정 판결이 나와도, 사법부가 기록으로 남긴 그날의 사실관계와 판단은 알파벳 뒤에 가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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