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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무덤속에서 목용 발굴[함명철]

김포 무덤속에서 목용 발굴[함명철]
입력 1987-06-10 | 수정 1987-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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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 무덤속에서 목용 발굴]

    ● 앵커: 작년 7월 경주 용강동 폐고분에서 발굴된 인물토형보다 1세기정도 빨리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가지고 무덤 속에 부장된 것으로 보이는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 13점이 최초로 발굴돼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 기자: 우리나라 고대사의 생활풍속과 사회제도를 연구하는데 획기적인 사례로 평가되는 나무로 만든 인형, 즉 목용 7점이 경기도 김포군 통진면 서암리에 있는 이 곳 야산 중턱 과수원 주인 없는 무덤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삼국시대 말에서 통일신라시대 초반 무덤 속에 부장된 것으로 보이는 길이 7cm정도의 목용 7점 가운데 여자 인형으로 보이는 3점은 머리와 얼굴 모양 두 손을 합장한 모습이 뚜렷하고 4점은 형체가 망가진 채 발굴됐는데 군데군데 주황색과 흰색, 청색으로 물감을 입힌 흔적이 역력합니다.

    나무로 만든 인형이나 흙을 빚어 만든 토용을 사자의 무덤 속에 같이 묻는 풍습은 삼국시대 초기, 왕권이 형성되면서 중국에서 본격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점도 찾을 수 없었던 목용이 무덤 속에서 대량 발굴되고 그 제작 연대도 경주에서 발견된 인물 토용보다 1세기 빠른 7세기경으로 추정됨에 따라서 학계는 토용보다는 목용이 우리나라에 먼저 전래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 임효재(박사, 서울대 박물관장): 진, 한 시대에 오게 되면 목용이 차차 줄어들고 토용이 많이 성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중국의 예를 보아서 우리나라에서도 목용이 토용보다 먼저 사용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무덤에서 나온 7점의 목용은 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서 지금으로부터 약 1,300~1,400년 전의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 기자: 임 박사는 또 평민의 것으로 보이는 김포 무덤에서 목용이 발굴됨에 따라 허수아비 부장이 왕족이나 귀족뿐만 아니라 평민 사이에서도 크게 유행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임효재(박사, 서울대 박물관장): 경주라든가 그 일대에서 나온 것은 대체적으로 왕릉 아니면 왕족에 가까운 높은 신분에서만 나왔는데 이번 여기서 나온 것을 보면 일반 서민의 묘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서 서민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용을 묻는 풍습이 널리 퍼져있었지 않나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는 확실한 예로 생각이 됩니다.

    ● 기자: 한편 호암예술관도 그 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기원 7세기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길이 8.5cm, 폭 2.5cm 크기의 여자 나무 인형 6점을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이에 따라 역사고고학계는 이번 목용발굴은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가 왕족 중심, 토용중심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목용의 본격 발굴 조사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MBC뉴스 함명철입니다.

    (함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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