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주요 내용 정리]
● 앵커: 오늘 증인으로 나온 정승화 씨는 12.12사태는 정권력에 눈이 어두운 일부 정치군인들이 쿠데타에 장애가 되는 당시 육군 참모총장 자신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불법으로 자행한 군사반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청문회 주요내용을 김형민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 기자: 오늘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정동년 당시 전남대 복학생은 김대중 씨로부터 5백만 원의 활동자금을 받았다고 수사과정에서 진술한 것은 사실이지만은 이 같은 진술은 혹독한 고문에 못 이긴 거짓 자백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동년 씨는 자신이 동교동 김대중 씨 자택을 방문한 것으로 돼 있는 5월 5일 당시 광주에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이웃사람 문효선 씨 등과 자신이 강사로 재직하던 광주 한미학원의근무일지 등을 증인과 증거물로 채택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재판부 측에 의해 거절당했다고 밝혔습니다.
● 김인곤 의원: 한 세 가지를 묻겠는데, 첫 째 증인은 광주에서 태어났고 광주에서 성장했으며 광주에서 살고 있는 광주시민으로써 5.18광주 민주화 운동이 계엄당국의 발표처럼 김대중 씨에 의해 일어났다고 보십니까?
둘째로 김대중 씨를 위해서 일어났다고 보십니까?
셋째로 5.18항쟁이 순수한 민중 항쟁이었다고 보십니까?
● 정동년 씨: 광주항쟁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지역감정 폭발이라든지, 과잉진압이라든지, 김대중 구속이 원인이 되었다고 얘기를 합니다만 은 지역감정 폭발이라든가 또는 과잉진압이라든가 이런 것은 잘못 된 편견과 저의가 숨어있기 때문에 그 설명은 굉장히 길어서 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김대중 씨 구속이 광주 항쟁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광주항쟁을 김대중 씨가 사전에 배후 조정 해 가지고 사전 계획 하에서 이루어진 내란 음모였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내란을 일으켜서 불법적으로 권력을 탈취하고자 했던 정권 력 에 눈이 뒤집힌 전두환 군부가 자기 권력 탈취의 명분을 잡기 위해서 아마 김대중 씨와 광주시민, 그리고 저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 기자: 정 씨는 또 희생자 사체에 암매장 설과 관련해서 당국의 광주 사태 사망자 확인 작업 후에 광주에서 아파트 단지 조성 공사 중 암매장한 사체와 유료 품 들이 나와서 군부대에서 공사를 중지시킨 일이 있다는 제보와 군부대에서 사체를 화장 또는 암장했다는 제보 등이 있었으나 민간인 신분으로써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두 번째 증인으로 나선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은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상부의 재가없이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들어와 총격까지 하며 자신을 체포한 것은 엄연히 쿠데타를 목적으로 한 군사반란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 의원: 증인은 이 12.12사태가 우국충정에서 일어난 거사인지, 아니면 군 위계질서를 파괴한 일부 극소수 군인의 쿠데타라고 보는지, 혹은 다른 견해가 있든지 간에 역사적인 이 증언대를 통해서 우리 위원회는 물론이고 모든 국민 앞에 소신을 밝혀주길 바랍니다.
●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 12.12사태에 대해서 저로써는 이것은 제가 훈육을 잘못한 저의 일부 부하들에 의해서 어떤 그 권력을 지향하는 이러한 쿠데타의 목적을 둔 군사반란으로 믿고 있습니다.
● 기자: 정승화 씨는 자신을 체포하라는 지시는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 본부장이 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자신은 12.12 당시 이동한 9사단과 일부 공수여단에 대해 부대이동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정승화 씨는 이어 12.12 사태 당시 합법적인 지휘체계에서는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할 경우 내전의 위험이 예상돼서 강경진압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증인으로 나온 심재철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자신은 김대중 씨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지만 온갖 고문과 회의에 못 이겨 법정에서도 거짓 진술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 의원: 김대중 증인, 몇 일전에 증인으로 나오셨습니다.
김대중 증인과 지금 심 증인하고는 사전에 연관이 있습니까?
● 심재철 씨: 제가 법정에 서기전까지는 어떠한 연관도 없었습니다.
● 의원: 그런데 여기 재판 기록을 보면 증인께서 예를 들면 김대중 씨를 초청해서 강연도 하고, 같이 행동을 하신 걸로 돼 있던데요?
● 심재철 씨: 저희 서울대학교를 비롯해서 소위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주요대학에서는 김대중 씨를 초청해서 강연한 바가 없습니다.
왜 그러느냐.
정치인들이 학생들에게 신망을 못 받았습니다. 그 때
신망을 못 받는 사람들을 캠퍼스로 불러들여서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 기자: 심재철 씨는 학생운동과 재야단체였던 국민연합과의 관계에 대해 전국대학 총학생회장 모임에서 5월 22일을 총 궐기 일로 잡았을 때도 국민연합은 21일을 총궐기 대회로 정하고 있었다면서 따라서 학생운동은 국민연합과 연관 없이 추진되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MBC뉴스 김형민입니다.
(김형민 기자)
뉴스데스크
청문회 주요 내용 정리[김형민]
청문회 주요 내용 정리[김형민]
입력 1988-11-30 |
수정 198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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