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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무진년, 돌이켜보는 우리들의 자화상[하남신]

'88 무진년, 돌이켜보는 우리들의 자화상[하남신]
입력 1988-12-31 | 수정 198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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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무진년, 돌이켜보는 우리들의 자화상]

    ● 앵커: 흔히 올 한해 보내는 것이 예년의 10년 쯤 보낸 것 같은 기분이라고들 말씀하고 계십니다만 그 만큼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사례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 졌던 한 해였습니다.

    역사의 저 편으로 사라져가는, 88년의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려보겠습니다.

    하남신 기자입니다.

    ● 기자: 1988년 무진년은 민주화의 소망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6공화국 출범을 알리는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식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그토록 갈망하던 평화적 정권교체가 실현됐음을 확인했습니다.

    ● 노태우 대통령: 국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기쁨과 아픔을 같이 하는 국민의 동행자, 이것이 제가 진실로 추구하는 대통령의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함께 걷는 민주주의의 출발선 상에 서 있습니다.

    ● 기자: 17년 만에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제 13대 국회의원 선거는 우리 헌정사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과반수 의석도 확보하지 못한 민정당의 참패, 정국의 주도권은 야당으로 넘어갔습니다.

    집권 여당은 수적 열세를 피부로 느껴야 했습니다.

    ● 국회의장: 대법원장 정기승 임명 동의 건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 기자: 16년 만에 국정감사가 부활됐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청와대와 안기부의 서류까지 들추면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소 야대, 4.26 총선이 가져 온 이 미증유의 현상은 세 김 씨를 다시 일어서게 했습니다.

    그리고 입법부가 더 이상 행정부의 시녀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민들은 한국 선수들의 선전과 쏟아져 나오는 금메달에 열광했습니다.

    시민 정신의 승리로 일컬어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민족적인 자긍심을 심어주었습니다.

    그것은 민주화와 개방의 뿌리를 다지는 밑거름이 됐고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치를 새롭게 했습니다.

    올림픽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국은 5공 비리 청산 문제로 소용돌이 쳤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가의 무더기 구속 사태는 권력에 빌붙어서 전횡을 일삼은 자들에 대한 철퇴였습니다.

    국민적 분노와 지탄의 화살은 연희동 전두환 씨에게 모아졌습니다.

    ● 전두환 전 대통령: 국민여러분이 주시는 벌이라면, 어떤 고행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국민 여러분이 가라고 하는 곳이면 조국을 떠나는 것이 아닌 한 속죄하는 마음으로 어느 곳이라도 가겠습니다.

    ● 기자: 전직 대통령은 권력의 무상함을 실감케 하면서 은둔의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백담사 주변에는 삭풍이 몰아쳤습니다.

    ● 노태우 대통령: 모든 것 다 버리고 떠난 전임 대통령의 잘못을 물어서, 7년 반 동안 이 나라 국가원수로 일 해 온 그를 재판장에 묶어 세워야 하겠습니까.

    ● 기자: 노태우 대통령은 당정개편과 사면복권 등의 시국 수습 조처를 취하면서 5공문제를 올 해 안에 매듭짓자고 호소했습니다.

    국회 청문회의 TV 생중계는 대중정치 시대의 막을 열게 했습니다.

    실황 중계를 통해서 정치의 실상이 안방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국민들은 호기심과 충격 속에 텔레비전 앞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

    청문회에 쏠린 국민적 관심은 5공 비리 청산의 기폭제로 작용했습니다.

    88년은 각계각층의 욕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 한 해였습니다.

    권위주의 통치 아래서 숨을 죽였던 목소리들이 민주화 바람을 타고 곳곳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대학가는 학기 초부터 통일 열기에 휩싸여서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했지만 이것은 결국 닫혀있던 통일 논의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스승의 머리를 강제로 깎기에 이른 학내 폭력은 깊은 우려와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88년은 또한 민주화 시대에 걸맞은 옷을 입기 위한 자기반성과 쇄신의 몸부림이 사회 전반에 확산된 해였습니다.

    지난 6월 대법원의 전면 개편을 요구하고 나선 젊은 법관들의 집단 서명은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다짐한 양심선언이었습니다.

    국 고위 장성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밝혀진 월간 중앙 오홍근 부장에 대한 테러 사건은 민주화 시대에 있어서 군의 역할과 사명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88년은 통일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바탕으로 북방 외교가 나래를 펴기 시작한 해였습니다.

    남북한 교류 확대와 대결 종식을 골자로 하는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은 북방 외교의 총체적인 방법론이었습니다.

    곧 이어서 열린 서울올림픽은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북방 외교의 활로를 열었습니다.

    북방 외교는 동구권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이달 초에 헝가리와 대사급 상주 대표부를 개설하는 등 구체적인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88년 한국 경제는 한 미 통상마찰과 원화절상, 노사분규의 파고에도 불구하고 연 3년째 12% 수준의 고도성장을 이룩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우리 경제는 올 한 해 동안 외형적인 성장과 질적인 변화를 이룩했지만 된 서리를 맞은 부동산 투기, 정의로운 분배 실현과 노사관계 정립 등의 문제점 등을 과제로 남겨놓고 있습니다.

    또 한 해가 갑니다.

    우리는 하나의 목소리로 민주화를 외쳤고 하나의 목소리로 민주화를 껴안았습니다.

    장엄하게 타오르는 올림픽 성화에 민족의 저력을 불사르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1988년 무진년, 그 격동과 감동의 나날들을 우리는 민족사의 분수령으로 기억 할 것입니다.

    MBC뉴스 하남신입니다.

    (하남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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