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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비운의 일생[이상용]

조선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비운의 일생[이상용]
입력 1989-04-30 | 수정 198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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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비운의 일생]

    ● 앵커: 지난 4월 21일 덕혜옹주의 별세에 이어서 9일 만에 또 다시 이방자 여사가 오늘 타계함으로써 지나간 역사의 한 끝자락을 놓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방자 여사의 비운의 일생을 이상용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 기자: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그는 일본인이면서도 고종황제의 막내아들인 영친왕에게 시집와서 역사의 격랑 속에 고뇌와 갈등을 가슴으로 삼켜야 했던 한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1901년 일본 황족의 딸로 태어난 이방자 여사는 한일합방을 서두르던 일본의 야욕에 따라 당시 일본 황실에 볼모로 가있던 영친왕 이연과 18살의 나이로 강제 결혼해야만 했습니다.

    이방자 여사는 결혼한 지 얼마 안돼서 첫 아들을 잃고 비탄에 잠겨야 했으며 해방 후에는 조선왕실의 맥이 끊어지고 한일국교가 단절됨에 따라 두 사람은 생활능력이 없어 빚에 허덕여야 했고 영친왕은 이 때문에 뇌일혈로 쓰러졌습니다.

    다행히 구 왕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려로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는 고국을 떠난 후 56년 만에 꿈에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았으나 기쁨도 잠시일 뿐 지병인 뇌일혈로 영친왕은 영면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을 잃은 이방자 여사는 슬픔과 고독감을 달래기 위해서 명휘원과 자행회를 설립하는 등 불우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갖가지 사업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펼쳐왔습니다.

    ● 고 이방자 여사: 5년 후에 자행해를 만들었습니다.

    또 우리 시어머니 엄비마마께서 양정, 숙명 진명학교를 만들었지만 우리들은 신체장애자 복지사업을 해야 한다고 유언을 하셨습니다.

    ● 기자; 비운의 근대사와 더불어 살다간 이방자 여사.

    오늘 이방자 여사의 죽음은 구한말 어지러웠던 이 나라의 위상을 새삼 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상용입니다.

    (이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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