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고지도자로 군림했던 호메이니의 일생]
● 앵커: 2500년 역사의 왕정을 무너뜨린 종교지도자, 강대국에 도전해서 회교가치관을 실천한 정치지도자 거룩한 전쟁의 미명하에 십 수만의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독재자 호메이니옹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여러 가지입니다.
호메이니옹은 과연 누구인가?
박수택 기자입니다.
● 기자: 이슬람은 인간생활의 모든 면을 포괄하는 종교다.
이것이 아야틀라의 의견이다.
호메이니에 대해 이란의 공식 전기에 묘사된 말입니다.
이 말은 호메이니가 평생을 두고 추구한 가치관이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호메이니는 1902년 9월 테헤란 남서쪽 호메인 마을에 회교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호메이니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전통회교교육을 받고 20대 후반부터 시아파회교의 중심지 콤에서 교리를 가르치면서 독자적 견해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호메이니의 반체제 활동은 3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1941년엔 당시 팔레비국왕의 근대화 정책과 영국의 이란지배를 비난하는 평론을 쓰기도 했습니다.
호메이니는 독선적 성향과 엄격한 성품을 지닌 채 서구지향적인 왕정에 대해 반대투쟁을 계속하다 1964년 국외로 추방됩니다.
그는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국내세력들에게 설교녹음테이프를 보내며 반정부활동을 지도했습니다.
당시 이란은 오일달러로 흥청됐고 지도층의 부패는 날로 번져갔습니다.
78년 팔레비국왕에 맞서 시아파 회교성직자들을 중심으로 도시빈민과 고학력 실업자들이 가세한 이란 혁명세력이 결성되자 호메이니는 이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떠오릅니다.
79년 1월 팔레비가 망명하자 호메이니는 15년 만에 귀국해 회교공화국에 종신 최고지도자로 추대됩니다.
회교혁명정부 수립이후 10년 동안 그는 절대적인 지도력을 발휘해 회교가치관에 바탕을 둔 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회교근본주의를 확산시키려는 호메이니의 열정은 친서구적인 다른 회교권 국가들을 자극시켰으며 이란, 이라크 8년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MBC뉴스 박수택입니다.
(박수택 기자)
뉴스데스크
이란 최고지도자로 군림했던 호메이니의 일생[박수택]
이란 최고지도자로 군림했던 호메이니의 일생[박수택]
입력 1989-06-04 |
수정 198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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