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뉴스데스크, 역대 총 13명의 앵커시대 선도]
● 앵커: MBC뉴스로 격동의 30년을 잠시 함께 보셨습니다.
MBC뉴스의 간판이면서 또 우리나라 뉴스의 새 지평을 열어왔던 MBC뉴스데스크는 지난 21년 동안에 모두 13명의 앵커맨들이 차례로 이끌어 왔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제 자신으로 보자면 모두들 선배들입니다마는 역대 앵커맨들의 증언을 한마디로 종합을 해보면 앵커맨으로서의 큰 보람, 또 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자기희생이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21년의 발자취 그리고 애환을 역대 앵커맨들로부터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 아나운서: 1970년 10월의 MBC뉴스데스크의 탄생은 한국방송사의 신기원이자 바로 앵커시대의 개막이었다.
평면적 고도에서 입체적 고도로 단순한 전달에서 시청자의 참여를 이끈 전달방식은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 박근숙 초대앵커(71-72 당시보도국장): 일주일쯤 방송 나가니까 대단한 시청자들의 관심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책임감이 더 느껴지는 땐데 내부적으로 보면 대단히 장비도 대단히 영세했고...
● 김기주 앵커(71-74전 제주사장): 요즘 같은 뉴스데스크 같은 형태를 뉴스가 지금 생각하면 사실 콜롬버스의 달걀입니다.
이게 누구나 다할 수 있고 별거 아닌 것 같이 생각되는데 그 당시에는 과히 그게 혁명적인 방송뉴스로서는 혁명적인 그런 건데 MBC가 처음으로 방송기자들이 직접 아나운서를 전적으로 배치한 앵커시스템의 뉴스, 또 취재기자가 직접 자기가 취재한 것을 자기가 책임지고 보도하는 그런 뉴스형태가 그때 처음이었죠.
● 아나운서: 초창기 열악한 조건 속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마는 기자 리포트 후에 앵커가 코멘트를 달아 오피니언리더의 역할도 자부하는 진취적인 노력을 경주했다.
● 형진환(71-72 현 진주MBC사장): 제 경우도 무의촌에서는 병원을 가기보다는 약국을 먼저 찾아간다는 보사부 기자의 리포트에 의해서 병이 나면 병원을 가야지 약국을 가는 것은 안 좋지 않느냐 하는 코멘트를 했다가 약사회로부터 항의를 받는 그런 경우도 없지 않았었습니다.
● 곽노환(72-78 전 삼척MBC사장): 카메라는 본인을 잡고서 멘트를 하라고 그러면 하는데 리포트기자 이름 댑니다.
그러면 거기서 그 사람이 나오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무것도 안 나오고 그 앵커 얼굴만 크게 화면에 나와 가지고 될 진행을 해야 될지 몰라가지고 아주 당황했던 일이 몇 번 있습니다.
● 아나운서: 화려한 무대 위에는 언제나 애환이 서리듯 앵커에게도 생방송과 사생활침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러한 고충을 나누기 위해 70년대 후반 들어서는 일선의 중견기자들이 투입될 수밖에 없었고 이때부터 80년까지 2인 또는 3인의 복수앵커 체제가 이어졌다.
● 하순봉(76-79 전 한국방송광고공사사장); 국내의사는 어떤 본받을 만한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의 CBS뉴스의 크럼가치오를 미국서부터 공수를 해 와가지고 그걸 보고 앵커맨이 어떤 자세로 어떻게 뉴스를 진행할 것이냐 하는 걸 직접 보면서 공부를 해가면서 진행을 했는데 해도 열중을 해서 때로는 그 장면이 꾸며 나오기도 했습니다.
● 김기도(78) 전 청와대 비서관: 지금도 제가 소파에 앉아서 편안하게 뉴스데스크를 지켜 볼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하루아침에 앵커가 된 것이 아니고 이 뉴스데스크가 시작될 때 보조 진행자로서 또 그 몇 년 후에는 정진행자로서 또 몇 년 후에 뉴스데스크의 그 영광스럽고 또 힘든 앵커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시는 분이나 또 그 진행을 맡아 해준 분들이 아무 실수 없이 잘 뉴스가 전달되느냐 하는 염려 때문에 그리고 기대 때문에 아직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 밤 9시가 되면 뉴스데스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 아나운서: 80년 말 칼라방송이 시작되고 그 이듬해 3월 뉴스데스크는 탄생 10년 만에 드디어 앵커의 고정화를 이룩했다.
이는 뉴스 경쟁시대에 앵커의 퍼스널러티를 강점으로 작용케 함이었고 나아가 선의의 경쟁은 앵커의 자리를 해외로까지 옮기게 했다.
앵커의 고정화는 뉴스에 쏟아지는 모든 시선을 혼자서 소화해야 했기에 고독감도 더욱 컸다.
● 강성주(83-88현 마산MBC사장): 마치 유격수가 더블 플레이하는 것처럼 애써 유연하게 이 뉴스 저 뉴스를 섭렵하며 카메라에 눈을 쏟다가 조명이 꺼지고 모든 긴장상태가 끝나면 마치 고독한 카우보이처럼 황량감 마저 느끼곤 했죠.
무엇보다도 또 지금까지의 기자 생활전반이 그랬습니다마는 가정생활에 충실치 못했었다는 그런 아쉬움이 커가지고 요새 유행하는 김정수의 당신이라는 노랫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 아나운서: 80년대 후반 들어서는 시청자들에게 낯익은 특파원들이 곧장 앵커로 가는 길을 열었고 이어 젊음과 신선 감을 강조화기 위한 고 앵커시대도 기틀을 잡았다.
MBC뉴스의 간판이자 대한민국 뉴스의 상징으로 성장한 뉴스데스크와 그의 얼굴 앵커맨 이제 MBC뉴스데스크는 21살 청년으로 성장한 만큼 양어깨에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더욱 어른스럽게 깨달을 것을 다짐합니다.
● 이득렬(76-87 현 MBC보도이사): 지금 이제 MBC뉴스를 총괄하는 보도담당이사직을 맡고 있습니다.
직책은 주역입니다마는 항상 일선기자의 기분을 뛰고 있습니다.
저는 앵커맨을 하면서 그리고 지금 직책을 갖고 있으면서 항상 생각하는 것이 우리 텔레비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사회가 확 달라질 수 있다고 하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나쁜 뉴스를 해놓고도 붙잡히면 그 책임이 사회에 있는 냥 둘러버리는 그런 나쁜 사회풍조도 텔레비전이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텔레비전의 역할이 여러분들께 정확한 정보를 보내드리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인 줄은 압니다마는 보다 밝고 보다 명랑한 우리 사회를 만드는데 MBC뉴스가 기여하도록 노력을 할까합니다.
(엄기영 앵커)
뉴스데스크
MBC 뉴스데스크, 역대 총 13명의 앵커시대 선도[엄기영]
MBC 뉴스데스크, 역대 총 13명의 앵커시대 선도[엄기영]
입력 1991-12-02 |
수정 1991-12-02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