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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독일, 기본조약이 통일로[신창섭]

독일, 기본조약이 통일로[신창섭]
입력 1991-12-13 | 수정 199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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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기본조약이 통일로]

    ● 앵커: 우리보다 앞서, 그러니까 작년에 통일을 이룩한 독일은 우리의 오늘 합의문과 비교할 수 있는 동서독 기본조약을 20년전에 체결했었습니다.

    그 체결 과정과 주요내용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국제부 신창섭 기자가 정리해 드립니다.

    ● 기자: 동서독간의 기본조약은 불신의 장벽을 깨고 상호 교류를 통해 신뢰를 넓혀가겠다는 공동인식의 선언이었습니다.

    기본조약의 출발점은 브란트의 동방정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969년 집권한 서민당의 브란트 수상은 동방정책이라는 깃발아래 대동독 화해정책을 폈습니다.

    브란트 정권은 동독을 인정하는 나라와 수교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대외정책인 이른바 하인슈타인 원칙의 포기를 선언합니다.

    이어 1970년 3월19일 에어프르트에서 브란트와 슈토프간의 제1차 양독 정상회담이, 5월21일에는 2차 정상회담이 카셀에서 열립니다.

    양독은 정상회담에서 제기된 의제를 꾸준한 실무 접촉을 통해 동서 베를린간 끊겼던 전화선을 잇고 72년에는 통행, 무역, 그리고 교통조약을 맺어 땅 고르기 작업을 한 뒤 72년 12월21일에는 통일로 가는 바이블이 된 기본조약에 조인했습니다.

    기본조약의 주요내용을 보면 3조에 상호 무력사용 금지를 비롯해 7조에 경제, 교통 분야에서의 포괄적인 교류 협정, 8조에 상호 대표부 설치 등 모두 10개의 조문과 부속 문서로 되어 있습니다.

    기본조약 체결 후 양독 관계는 근본적으로 질과 폭에 있어서 확대 발전되어 나갔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적 왕래입니다.

    서독에서 동독으로 뿐 아니라 동독에서 서독 방문이 허용돼 통일 이전까지 무려 천만명이 장벽을 넘나들었습니다.

    또한 87년에는 호네커가 드디어 본을 방문하기에 이르렀고 같은 해 과학기술, 환경, 그리고 문화협력협정이 양독간에 체결돼 전면적인 협력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결국 이 같은 교류가 동독사회에 민주화 자유의 씨앗을 심어주었고 이게 밑거름이 돼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 후 1년이 채 못돼 국가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독일과 우리가 처한 여건과 주변 변수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의 기본조약이 통일로 가는 분수령이 되었듯이 남북한 합의문은 역사적 서명에서 한걸음 나아가 남북통일의 큰 길을 여는 지침이 될 것입니다.

    MBC뉴스 신창섭입니다.

    (신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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