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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대통령 당선자의 정치역정 결단의 승부사[김석진]

김영삼대통령 당선자의 정치역정 결단의 승부사[김석진]
입력 1992-12-19 | 수정 199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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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대통령당선자의 정치역정 결단의 승부사]

    ● 앵커: 김영삼 대통령당선자는 30년 야당 정치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 온 집념을 통해서 우리 헌정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집념과 결단의 정치인으로 지칭하면서 당선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당선자의 정치역정 김석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기자: 집념과 결단의 지도자, 뛰어난 승부사, 35년간의 야당 정치를 청산하고 집권 여당의 후보로 출발해 평생의 집념을 이뤄낸 김영삼 당선자, 그를 지칭하는 이 같은 표현은 고비마다 숱은 도전과 시련을 정면 돌파해 승부근성으로 이겨낸 과거의 정치역정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약관 25세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유신체제와 80년대 권위주의 시대를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일관한 김영삼 당선자는 당시 온갖 정치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79년 유신정권에 맞서 총재직과 의원직 개명의 시련을 겪고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아 결국 유신체제의 종말을 앞당겼던 김영삼, 83년 광주항쟁 3주년을 맞아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으로 12대 총선에서 야당 돌풍을 일으켜 87년 6월 민중항쟁을 주도하면서 김대중씨와 함께 야당의 거목으로 우뚝섰습니다.

    원내총무 5번, 대변인 2차례, 그리고 야당 당수 3번 등 헌정 40년사에서 그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다채롭고 화려한 정치 경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숱한 시련이 따랐습니다.

    87년 13대 대통령선거 패배에 이어 이듬해 4월 총선에서 제2야당의 자리마저 평민당에 내준 그는 구국의 결단임을 내세워 3당 통합을 전격 선언합니다.

    야당에서 여당으로 탈바꿈한 그는 집요하게 따라다닌 변절 시비와 민주당 최다 계파인 민정계의 끝없는 견제로 오래도록 시달려야 했습니다.

    집권당 사상 초유라는 당내 자유경선도 민정계 일각의 반발로 대통령후보 선출에 따른 후유증을 겪으면서 중진의원들의 무더기 탈당 사태 등 당 내분의 위기도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기는 곧 기회임을 스스로 내세워 특유의 낙천성과 친화력으로 첫 야당 출신 여당 총재에 올랐습니다.

    ● 김영삼(대통령당선자): 민주자유당은 국민의 저력을 결집시키고 변화를 주도하는 개혁 정당으로 탈바꿈해야만 합니다.

    ● 기자: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군 장봉면 외포리에서 멸치어장을 경영하는 유복한 가정을 배경으로 태어난 김영삼, 경남 중학과 서울대 철학과를 거치면서 비교적 순탄한 환경에서 성장한 그는 솔직함과 정직을 생활철학으로 삼았습니다.

    매일 아침 마산에 있는 부친 김홍조옹에게 전화를 걸어 문안인사를 드리는 그는 상도동 자택 야산에서 조깅을 하루도 거르지 않아 철저한 자기관리의 일면을 엿보이게 합니다.

    ‘대도무문’, 그 자신 당당하게 옳은 길을 걷겠다는 스스로의 집념은 이제 깨끗한 대통령, 강력한 지도자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신한국 창조의 기수로써 새로운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석진입니다.

    (김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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