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김일성 주석의 49년 소련방문 기록영화 입수 ]
● 앵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지금도 살아있는 민족의 비극, 6.25.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난 1954년생 이후가 벌써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70%가 넘는 310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6.25는 그래서 특히나 새로 조명이 되고 또 규명이 돼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6.25 관련 소식을 다각도로 보도를 해 드리겠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6.25 전쟁이 1949년 3월에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해서 여러 가지 원조와 특히 종주국 소련에 스탈린에게 전쟁에 대한 동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문화방송은 그때 김일성의 첫 모스크바 방문을 상세히 기록한 영화를 러시아로부터 입수했습니다.
이 필름에서 김일성은 소련의 남침 계획 지원을 뜻하는 요구와 또 감사의 뜻을 분명히 표하고 있습니다.
임흥식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기자: 49년 2월 22일.
김일성은 훗날 많은 학자들에 의해 6.25 발발과 관련된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게 하는 첫 소련 방문을 시작합니다.
모스크바 역에는 니코얀 부수상과 그로미코 당시 외무 차관이 김일성을 맞이합니다.
소련과 북한 당국은 김일성의 첫 모스크바 방문에서 조소 경제와 문화에 관한 협정이 체결됐다는 사실만을 밝히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소련 방문을 상세한 특집으로 다뤘던 당시 기록물에서 스탈린의 모습은 물론 스탈린의 이름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보름여 동안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스탈린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하는 등 회동을 가졌다는 것이 정설이어서 당시 스탈린과 김일성 사이에 오갔던 밀약 내용은 더욱 의문시 되고 있습니다.
당시 스탈린 휘하에 있었던 후르시초프 전 소련 수상은 그의 자서전에서 당시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무력 남침 지원을 강력하게 요청했다며 남침 계획을 소련 고위층으로서는 처음 밝혔었고 최근 군사 전문가들은 김일성의 첫 소련 방문 후 전투기 90대를 공급받는 등 군사지원 약속이 오갔다고 구체적인 자료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소련 측으로부터 군사력 지원, 혹은 남침 지원을 약속받았다는 추측을 뒷받침하듯 김일성은 소련을 떠나면서 스탈린 만세, 소련 만세를 거듭했습니다.
이후 53년 전쟁이 끝난 뒤 김일성은 소련을 다시 방문해 소련에 감사의 뜻을 표시함으로써 소련의 지원에 따른 남침설을 뒷받침했습니다.
MBC뉴스 임흥식입니다.
(임흥식 기자)
뉴스데스크
북한 김일성 주석의 49년 소련방문 기록영화 입수[임흥식]
북한 김일성 주석의 49년 소련방문 기록영화 입수[임흥식]
입력 1992-06-25 |
수정 199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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