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폭동, 흑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현실 일깨운 계기]
● 앵커: 로스앤젤레스로 가보겠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이 오는 29일로 1년이 됩니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한인사회는 아직까지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사건은 흑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일깨운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LA에서 정기평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기자: 흑인 밀집 거주지역인 LA 사우스센트럴의 맨체스터 버몬가입니다.
이곳은 지난 해 폭동으로 가게들이 불타버린 자리가 아직도 폐허처럼 방치되고 있습니다.
● 인터뷰: 내 친구 한국인의 가게도 있었다.
● 기자: 폭동 1주년이 되었지만 그 상처는 아직 깊이 남아있음을 확인해 주는 현장들이 이처럼 LA 곳곳에서 흔히 발견되고 있습니다.
어떤 피해자는 당시의 충격으로 기억력을 잃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피해로 수입이 끊기자 자식이 대학을 중퇴하고 가출한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 같은 고통을 이중, 삼중으로 겪는 피해자들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습니다.
● 오봉균(한인피해자협의회 사무국장): 본인이 예를 들어서 오너인데 총상으로 말미암아 정신분열증이 와 가지고 뭐가 뭔지 몰라요, 지금.
그래서 지금 카우니 지역의 무슨 정신병원에 다니고 있고, 오너가 그러니까 각종 서류파일을 못 찾아서 정리를 못해서 그야말로 공중에 붕 뜨는 아주 비참하고 처참한 그런 상황입니다.
● 기자: 이영희, 이정희씨 부부는 오늘 LA 헐리우드공원 묘지에 있는 아들 이재성군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이재성군은 지난 해 폭동 당시 사망한 유일한 한인 희생자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는 아들의 묘소 앞에서 어머니는 결국 오열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 이정희(폭당 희생자 이재성군의 어머니): 제가 힘들 때 많이 위로해 줬고 남편이 한 번 실패했던 게 다시 일어서기 힘드니까 한국 가서 3개월, 4개월씩 있을 때 제가 여기서 조그만 세탁소를 하면 아들이 와서 많이 도와주고...
● 기자: 지난 해 폭동은 한편으로 한인사회에 커다란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왜 흑백간의 갈등에 엉뚱하게 한인들이 피해를 입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따져보게 된 것입니다.
특히 흑인과의 갈등해소가 한인들에게 가장 큰 현안으로 대두되었습니다.
● 장태한(포모나대학): 우리가 타 민족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 주류사회에 융화를 하는 그러한 자세를 갖고 그러기 위한 활동을 해야 되겠다는 것이 가장 큰 교훈이지요.
● 케네스 플라워스 목사: 한ㆍ흑인 모두 형제처럼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 기자: 흑인 동네에서 다시 영업을 시작하면서 한인 업주들은 흑인을 종업원으로 고용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한인 업주들은 흑인 고객을 이해하고 때로는 그들에게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터득했습니다.
● 서정준: 기왕에 여기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동안에는 이 지역 주민들하고 우리가 한 커뮤니티에서 산다는 인식을 가진다면 충분히 흑인이나 히스패닉하고도 저희가 손을 맞잡고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브래들리(LA 시장): 한ㆍ흑 종교 지도자들이 화해에 전력하고 있다.
● 기자: 어쨌든 40년만에 폭동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고 1년을 맞으면서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것이냐, 아니면 끝내 좌절할 것이냐가 한인사회가 선택할 몫으로 남아있는 셈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MBC뉴스 정기평입니다.
(정기평 기자)
뉴스데스크
LA 폭동, 흑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현실 일깨운 계기[정기평]
LA 폭동, 흑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현실 일깨운 계기[정기평]
입력 1993-04-25 |
수정 199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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