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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6.25 44년만의 귀향한 김계철씨[박병용]

6.25 44년만의 귀향한 김계철씨[박병용]
입력 1994-06-25 | 수정 199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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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44년만의 귀향한 김계철씨]

    ● 앵커: 오늘은 6.25 전쟁이 난지 44년이 되는 날입니다.

    전쟁당시 북을 택했다가 다시 북을 버리고 44년 만에 귀향한 한 개인의 생을 소개하겠습니다.

    박병용 기자입니다.

    ● 기자: 44년만의 귀향.

    약관 20살에 가족에게 작별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나 64살, 흰머리가 돋아난 초로의 나이가 돼서야 다시 찾은 고향.

    월북과 북한탈출, 그리고 중국망명.

    한 사람의 일생이 감당하기엔 역사의 멍에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 김계철씨(중국 흑룡강성 거주): 저는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 다니니까 좀 공부를 해봤으면 싶었는데 마침 이 사람들이 설득하는 게, 이제 통일이 되고 전쟁이 끝나면 너희들 다 북한에서 돈도 없이 맘대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선전을 많이 하고...

    그렇게 저를 오라고해서 결국은 북한 군대에 끌러가기 싫은데, 니가 지금 앞으로도 해놓은 일이 있어야 대학을 갈 수 있다고 해서 군대 가기 싫은 걸 억지로 끌려갔는데 온 길거리에 시체더라고...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은 나도 이렇게 죽게 되면 아무도 모르게 죽는데 이걸 집의 부모는 모르고 할머니는 계속 기다릴 것이다, 이 전쟁은 참 참혹하다, 왜 전쟁을 해야 되는가, 이 전쟁을 누가 시작했는가 하는 게 머리에서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 기자: 휴전과 함께 북한 노동당 정치학교 1기생인 그는 외교부에 들어가 출세가두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그 세월도 잠깐이었을 뿐 남한출신 인사들에 대한 숙청작업이 시작되자 그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북한을 탈출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5년 만에 겨우 복권처분을 받았고 2년 뒤인 67년 9월 부인과 세 자녀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중국에서 그는 북한 김일성체제를 비판하는 집필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한민족 문화교육협회를 결성해 조선족의 협동, 단결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 김계철씨: 민족문화를 계승, 수호, 발전시켜야 할 그런 의무가 살아있는 백의민족의 혈통을 가진 우리에게...

    ● 기자: 44년 만에 다시 찾은 옛집.

    어린 시절 잔뼈가 굵었던 그 옛집은 이미 허물어지고 낯선 사람이 새집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다만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정자와 장군바위만은 세월의 풍상 속에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 김계철씨: 불행한 이 나의 역사는 결국은 전쟁의 시련뿐인데, 다시는 이 땅에서 저 같이 이러한 불행한 일이 다시는 재생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제가 44년 만의 쓰라린 이국생활을 통한 피어린 저의 교훈이고 마음속의 말입니다.

    ● 기자: 자유로, 통일동산 강 건너 저편 북녘 땅에서는 오늘도 북한의 대남선전방송이 바람결에 실려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MBC뉴스 박병용입니다.

    (박병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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