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데스크

김일성은 누구[정형일]

김일성은 누구[정형일]
입력 1994-07-09 | 수정 1994-07-09
재생목록
    [김일성은 누구]

    ● 앵커: 지금부터는 어제 사망한 김일성 북한 주석을 다시 한번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산주의의 변질된 형태로서 독특한 주체 사상을 만들어서 49년동안 북한을 단독 이끌어 온 김일성, 그의 사상 전개 과정을 정치부 정형일 기자가 정리해 보았습니다.

    ● 기자: 김일성이 공산주의 단체에 가입하게 된 과정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김일성 전기가 그 과정을 미화시켜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김일성 전기에 따르면 그는 14살 소년때, 아버지 김형직이 만주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가 후송 도중에 탈주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만주에 간 뒤에 17살 때 공산단체에 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20살때인 1932년에 항일 유격대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김일성은 이때 중국 공산당의 사상을 철저히 익히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한반도에서 최초의 공산주의자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김일성은 다시 1942년에 소련 공산당과도 인연을 맺음으로서 주변 공산주의 세력에 지지를 받게 됩니다.

    일본군의 토벌 작전을 피해서 그는 소련 극동 지역으로 도피했고, 여기에서 소련군 정보 부대의 정보 요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렇듯 중국, 소련 공산당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그의 사상적 기반은 당연히 국내 공산주의파와 마찰을 가져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일성은 일단 국내 공산주의 세력과 먼저 손을 잡은 뒤에 소련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박건형과 같은 국내파들을 하나 하나 제거함으로서 1인자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국, 소련식 공산주의는 서서히 변질하기 시작합니다.

    1950년 중반에 소련에서 반스탈린 운동이 시작되자 김일성의 통치 기반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고, 또한 소련과 중국 사이에 벌어진 수정주의와 교도주의의 논쟁은 김일성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50년대 중반에 주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르크스 레닌 주의를 조선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이른바 ‘주체사상’을 지난 67년에 만들어냈습니다.

    그 뒤에 72년에 와서는 이 주체 사상을 사회주의 헌법의 통치 이념으로 명문화시켰습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요,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인본주의 철학을 근거로 한다는 김일성의 주체 사상, 그러나 북한의 선전과는 달리 이 주체 사상은 김일성 개인 독재를 위한 통치 장식물에 불과했고, 따라서 공산주의의 실패작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MBC뉴스 정형일입니다.

    (정형일 기자)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