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데스크

김일성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연대기[이정혜]

김일성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연대기[이정혜]
입력 1994-07-09 | 수정 1994-07-09
재생목록
    [김일성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연대기]

    ● 앵커: 네, 이번에는 김일성 출생에서부터 그의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의 82년 행적을 연대기로 엮어 보았습니다.

    이정혜 기자입니다.

    ● 기자: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에서 김성주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14살이 되던 1926년 만주로 간 김일성은 길림성 육문중학에 입학하면서 공산당청년동맹에 가입하고, 3년 후에는 동만지구 청년동맹위원회 서기에 임명됩니다.

    이어 1931년에 중국 공산당에 입당, 이듬해에 중국 공산당 조선인 지대장으로 승진하고 1935년에 이름을 김성주에서 김일성으로 바꿉니다.

    30살이 되던 1942년에 소련으로 간 김일성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소련군 소좌로 평양에 돌아와 북조선 5도 공산당 책임자 대회를 개최하고 조선공산당 북조선조직위원회 책임 비서를 맡게 됩니다.

    계속해서 북조선 노동당 부 위원장,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다, 1948년 9월에 북한정권 수립과 함께 내각 수상에 오르게 됩니다.

    1950년 군사위원회 위원장과 인민군 최고사령관을 맡으면서 6.25를 일으킨 김일성은 1953년 원수 칭호를 받고 9월과 10월 잇따라 소련과 중국을 방문합니다.

    1961년, 다시 소련과 중국을 방문해 우호 협력과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한 김일성은 1965년 인도네시아 종합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습니다.

    1966년에 당 중앙위원회 총 비서, 1972년에 국가주석과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되면서 김일성은 명실공히 당, 정, 군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1973년 조국통일 5대 강령을 발표한 김일성은 1980년 제 6차 당 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제안한데 이어, 8년 뒤인 1988년 신년사를 통해 남북연석회의 개최를 제의했습니다.

    1989년 동구권의 민주화 열풍이 불자 다급해진 김일성은 그 해 11월 비공식으로 중국을 방문해 등소평과 회담을 가졌으며, 이듬해에도 강택민 총서기와도 비밀 회담을 가졌고, 1993년에는 전 민족 대 단결 10대 강령을 발표하는 등, 공산주의 체제 유지에 안간힘을 써 왔습니다.

    1992년 4월에 대원수 칭호를 수여받은 김일성은 순조롭게 준비되던 역사적인 남북 정상 회담을 17일 앞두고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동맥경화증에 의한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MBC뉴스 이정혜입니다.

    (이정혜 기자)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