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는 고상문씨 가족들]
● 앵커: 고 씨의 가족들은 어제 소식에 접하고 3번 크게 울었습니다.
15년 동안 고 씨를 그리며 지낸 세월이 한스러워 울었고, 월북이라는 누명 때문에 당한 피해가 서러워서 울었고, 앞으로 다시 고 씨를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울었습니다.
김은혜 기자가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 기자: 고상문 씨 가족은 이제, 나몰래 눈물을 훔칠 필요가 없습니다.
고 씨가 자진해서 월북했다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이 이제 더 이상 괴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인 조복희 씨는 하루가 멀다하고 수사 기관에 불려나갔습니다.
● 조복희씨(부인): 대답했죠.
어떻게, 몇 년에 갔다, 똑같은 말만 매일 했어요.
● 기자: 조 씨의 친구들은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 조복희씨(부인): 그냥, 친구들이 나를 상대 안하는 것 같았어요.
내가 친목회 같은 곳에서 말을 하려고 하면 그냥 무시하고...
● 기자: 조 씨의 집안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시련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 조복희씨(부인): 아버지가 이사직을 박탈당하고 어머니는 쓰러지고 또 아버지는 퇴직당했습니다.
● 기자: 백방으로 탄원서를 냈지만 결국 가족 앞에 날라온 답장은 송환 노력 포기.
● 조복희씨(부인): 국가에서 어떻게 해 주려니 했는데, 야박하게 끊은 것 같아서 그게 좀 섭섭했어요.
처음에는 해 준다고 했거든요.
● 기자: 고 씨의 노부부는 행여 아들이 돌아올까 이사도 가지 않았습니다.
● 형 상구씨: 이 자리는 비울수가 없다.
아들이 올때까지...
이렇게 해서 계속해서 (이사가지 않고) 살고 계시고 전화번호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 기자: 조 씨는 기약도 할 수 없는 만남을 기다리며 딸 현미 양을 혼자 어렵게 키웠습니다.
● 조복희씨(부인): 내가 이 애를 낳아서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죠.
아버지가 없으니까 나 하나라도 잘 키우자, 하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 기자: 고 씨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가족들은 엄청난 충격에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고난의 세월을 겪어 온 고 씨 가족들은 남북 관계가 진전되면 혹시나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가닥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 노모 한연희씨(75): 우리 아들 얼른 와서 엄마 아버지 보고, 보고 싶고, 보고 죽어야지.
봐야 눈을 감고 죽겠어요.
그게 원이에요.
● 기자: MBC뉴스 김은혜입니다.
(김은혜 기자)
뉴스데스크
애타는 고상문씨 가족들[김은혜]
애타는 고상문씨 가족들[김은혜]
입력 1994-07-31 |
수정 199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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