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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대를 근거로한 김일성의 가계[하동근]

망경대를 근거로한 김일성의 가계[하동근]
입력 1994-07-09 | 수정 199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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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경대를 근거로 한 김일성의 가계]

    ● 앵커: 두 번째 부인인 김성애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었습니다.

    만경대를 근거로 한 김일성의 가계 하동근 기자가 정리해드립니다.

    ● 기자: 김일성의 조상은 임진왜란을 전후해 전북 전주에서 평안도로 이주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김일성의 가계가 본격적으로 내력이 알려지고 있는 시점은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 대로 김형직은 평양외곽에 살면서 이웃에 사는 기독교 장로 강돈욱의 딸 강반석과 결혼했고 장인의 후원으로 평양 숭실학교를 다녔습니다.

    김형직은 항일운동에 가담해 투옥됐던 사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큰 아들 성주 즉 김일성이 10살이 되던 1921년 만주로 이주했습니다.

    만주에서 자라던 김일성은 18살 되던 1929년 중학교 3학년 때 공산주의 청년조직에 들어가 유격대원이 됩니다.

    그 후 이른바 빨치산 활동 중 김일성은 같은 동료인 김정숙과 결혼해 아들 김정일과 딸 경희를 낳았습니다.

    1949년 김정숙의 사망 후 김일성의 거의 개인 간호부였던 김성애와 재혼해 아들 평일과 영일 그리고 딸 경진을 낳아서 모두 합쳐 3남 2녀를 두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모든 권력을 세습한 맏아들 김정일은 여성편력이 화려하다는 뒷소문처럼 첫 부인 성혜림과의 사이에 71년 아들 정남을 둔 뒤 74년 두 번째 부인 김영숙과 만나 딸 설송을 낳았습니다.

    김정일은 특히 자신의 아들 김정남이 14살 되던 지난 85년 김정남의 군복에 원수 계급장을 달아주는 등 이른바 3대에 걸친 권력세습을 위한 특수 영재교육을 시켜오고 있습니다.

    80대의 김일성 50대 초반의 김정일 그리고 20대 초반의 김정남 30년 한 세대씩을 3대에 걸쳐 계속 물릴 수 있을 것인지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김정일의 전면 대두 이에 따라 계모인 김성애와 이복동생 평일 등은 그 지위가 불안해지고 친누이 김경희와 매제인 장성택의 부상이 일단은 예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정권과 군 내부 등에서 만일 권력 투쟁이 벌어진다며 김성애 김평일 모자가 그동안 홀대 받아왔다는 점에서 반 김정일 세력을 등에 업고 김정일과 이른바 이복형제 간의 피나는 자리싸움을 벌일 가능성도 전혀 부정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MBC뉴스 하동근입니다.

    (하동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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