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내전 발발 배경 분석]
● 앵커: 이 보스니아 내전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종교 갈등입니다.
보스니아 내의 회교를 믿는 파와 그리스정교를 믿는 파의 세력 다툼에다가 주변 국가들의 이해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을 몰고 온 대결 구도를 국제팀 김경태 기자가 정리해 봅니다.
● 기자: 2개의 언어를 쓰고 3개의 종교를 믿는 4개의 민족, 유고슬라비아는 모듬 국가였습니다.
40여년의 장기집권 끝에 티토가 사망하고 지난 91년 6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고 떨어져나간 이듬해 보스니아도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정교를 신봉하는 세르비아계는 결사반대였습니다.
회교를 믿는 사람들과는 한 정부 아래서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이 3년 간 지속돼 온 이 살육전의 시작이었습니다.
종교문제로 시작된 내전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교를 믿는 사람들의 씨를 말리겠다는 이른바 인간 청소작업이 무자비하게 자행됐습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 아직 기억에 생생한 서방측은 더 이상 이들의 집안 싸움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자신의 군대에 유엔군의 푸른 헬멧을 씌워 보스니아에 파견했습니다.
소총 한 자루만 들고 장갑차에 올라타고 있을 뿐인 이들의 임무는 내전의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만신창이 되게 싸우는 양편을 잠시 떼어놓겠다는 유엔군의 소극적 개입은 보스니아 내전을 더 복잡하게만 만들었습니다.
집안싸움 말리겠다며 어설프게 끼어든 유엔의 개입으로 이제 보스니아 내전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계 그리고 유엔이 함께 뒤엉켜버린 미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경태입니다.
(김경태 기자)
뉴스데스크
[보스니아사태]보스니아내전 발발 배경 분석[김경태]
[보스니아사태]보스니아내전 발발 배경 분석[김경태]
입력 1995-06-09 |
수정 199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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