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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사태 관련 반란 세력과 막으려 했던 이들의 명암[임흥식]

12.12.사태 관련 반란 세력과 막으려 했던 이들의 명암[임흥식]
입력 1995-08-18 | 수정 199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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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사태 관련 반란 세력과 막으려 했던 이들의 명암]

    ● 앵커: 12.12 사태는 그 뒤 신군부 측에는 권력을 그리고 이에 맞섰던 이들에게는 고통의 길로 연결이 됐습니다.

    12.12는 이제 더욱 분명히 군사반란으로 규정이 돼서 그 역사적 평가는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12.12 두 세력, 반란을 한 사람과 이를 막으려 했던 이들의 명암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합니다.

    임흥식 기자가 보도합니다.

    ● 장태완(당시 수경사령관): 윤성민 장군하고도 통화했습니다.

    ● 이건영(당시 3군사령관): 응

    ● 장: 제 본의를 얘기했습니다.

    당장 돌파하겠다고 하니 상황을 봐가면서 하라고.

    아까는 출동준비가 안돼서 그런데 당신들 명령도 필요 없어 라고.

    ● 장태완(재향군인회장): 조기에 출동시키지 못했다는 거 그거는 군부대 출동 명령을 할 국방장관이나 대통령이 침묵을 지켜버렸다 말입니다.

    ● 기자: 12.12때 가장 격렬하게 신군부 측에 대항했던 장태완씨는 쿠데타 직후 보안사 분실로 끌려가 50일간 고초를 겪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장씨는 그저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란에 맞섰던 대가였습니다.

    ● 장태완(당시 수경사령관): 연금돼 있습니다.

    ● 이건영(당시 3군사령관): 장관님이!

    ● 장: 예.

    ● 이: 그럼 어떻게 하려는 건가.

    어떻게 되는 건가.

    하여튼 병력 움직이지 말라는 게 장관님 엄명이야.

    ● 기자: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이건영 의원의 말 입니다.

    ● 이건영 의원: 12.12사태를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며 군인으로서 나라의 안위와 군을 생각해 명령에 따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습니다.

    ● 기자: 이건영씨 역시 12.12직후 군복을 벗고 군 후배들의 정권에서 마사회장 자리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신군부에 대항했던 정병주 당시 특전사령관은 자살의 모습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반면 12.12 직후 찍은 이 사진 속 반란의 주역들은 10여 년 간 최고의 권력을 누립니다.

    그리고 12.12는 정당했다고 항변합니다.

    ● 전두환 前대통령(89년말 국회 청문회): 우발적인 사건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닙니다.

    사전에 준비된 병력출동 계획도 없는 쿠데타가 어디 있겠으며, 만약 쿠데타였다면 왜 본인이 그 직후 바로 권력을 장악하지 않았겠습니까.

    ● 노태우 前대통령 (87년11월 관훈토론회): 그 사건 바로 하고 그대로 군의본연의 임무를 그대로 우리는 수행을 했지, 정권 잡을 의도도 없었고 그런 행위도 여러분들 다 그 당시 기록 보십시오, 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 기자: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12.2는 쿠데타적 사건에서 검찰조사를 통해 군사반란으로 규정됐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을 기소 유예함으로써 반란의 책임을 묻지는 않았습니다.

    반란에 맞섰던 이들의 고통만이 억울할 따름입니다.

    MBC뉴스 임흥식입니다.

    (임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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