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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육 직후 최인규 전 내무장관 등 사형수 8명 마지막 모습[한정우]

오일육 직후 최인규 전 내무장관 등 사형수 8명 마지막 모습[한정우]
입력 1995-09-18 | 수정 199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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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일육 직후 최인규 전 내무장관 등 사형수 8명 마지막 모습]

    ● 앵커: 다음 소식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지난61년 5.16직후 군사정권의 혁명재판에 의해서 사형선고를 받은 최인규 前내무장관 등,사형수 8명의 마지막 모습이 월간조선에 의해서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 사형수들의 최후의 모습, 한정우 기자가 소개합니다.

    ● 기자: 3.15 부정선거 책임자로 구속된 최인규 前내무장관, 사형 집행 직전 최후진술을 하는 모습입니다.

    최氏는 별다른 언급 없이 모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4.19 당시 경무대 앞 발포 책임자로 사형을 선고받은 곽영주 경무관.

    소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권세를 누렸지만 생에 대한 미련탓인지 집행장 에선 걸음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습니다.

    정치강패의 대명사 이정재의 최후 모습입니다.

    완력 하나로 권력의 단맛을 다 봤으나 그 역시한순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자유당 시절 영화계를 주물렀던 임화수, 최후까지 구명 탄원서를 쓰는 등, 삶에의 집착을 버리지못했습니다.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남북교류와 평화통일을 주창했던 그는 반공을 국시로 내건 군사 정권에 의해 32살 젊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회당 간부 최백근氏 역시 남북 교류와 외세 배격을 주장하다 좌익척결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MBC뉴스 한정우입니다.

    (한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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