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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5.18 피해자들의 한맺힌 16년[이강세]

5.18 피해자들의 한맺힌 16년[이강세]
입력 1995-12-03 | 수정 199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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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맺힌 16년]

    ● 앵커: 5.18 희생자들의 억울함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전두환氏 등 5월 학살자들이 권좌에 있는 동안 유족들은 폭도의 가족으로 몰려 취직도 할 수 없었고 추모제도 지낼 수 없었습니다.

    5.18 피해자들의 한 맺힌 16년을 돌아봅니다.

    이강세 기자입니다.

    ● 기자: 묘지번호 135번 최미애氏, 임신 8개월인 몸을 이끌고 교사인 남편을 기다리다 집 앞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

    묘지번호 6번 박금희양, 당시 전남여상 3학년, 부상자들에게 헌혈하고 나오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

    80년 5월27일 탱크를 앞세우고 광주를 짓밟은 계엄군들은 이들을 쓰레기차에 실어 망월동에 묻었습니다.

    이처럼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그러나 폭도의 가족으로 몰려 87년까지 추모제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유족들은 취직도 할 수 없었고 해마다 5월이면 기관원에 이끌려서 강원도나 제주도에 구금됐습니다.

    ● 정수만(5.18 유족회장): 전 가족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연행도 되고 감금도 되고 또 외지로. 제주도나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할 것 없이 전부 외지에까지 버려졌던.

    ● 기자: 계엄군의 총칼과 고문으로부 상을 입은 시민들의 삶은 더욱 처참했습니다.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하반신 불수가 된 김요한氏는 16년 째 욕창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폭도라는 이유로 직장 한번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장애자 복지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氏는 오히려 희생자들을 보기가 부끄럽다고 얘기합니다.

    ● 김요한氏: 그분들에 대해서 죽은자들에게 그 흘린 피들을 헛되게 하는 그런거 때문에 굉장히 마음속으로 부끄럽고.

    ● 기자: 당시 부상자 2,700여명 가운데 95명은 이미 후유증에 시달리다 숨졌습니다.

    또한 5.18 당시 실종된 시민. 학생도 47명에 이릅니다.

    엄군에 희생된 뒤 어딘가에 암매장 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자들은 시신도 없이 5.18 묘역 한모퉁이에 영정만 걸려있습니다.

    이처럼 억울하게 숨져간 5월 영령들의 넋은 아직도 그 한을 풀지 못한 채 이곳 5.18 묘역을 떠돌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강세입니다.

    (이강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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