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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비서, 북한 권력의 핵심부였다[성장경]

황장엽 비서, 북한 권력의 핵심부였다[성장경]
입력 1997-04-20 | 수정 199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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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장엽 비서, 북한 권력의 핵심부였다]

    ● 앵커: 북한의 주체사상을 완성한 이론가, 김일성 부자세습 체제를 확립한 일 등 공신, 황장엽씨에게 붙는 화려한 수식어들입니다.

    북한에서의 황장엽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성장경 기자가 소개합니다.

    ● 기자: 소련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수재 황장엽은 김일성의 철학 비서를 맡으면서 36살의 나이로 권력 중심부에 그 첫 발을 내 디뎠습니다.

    62년에는 북한 최대 위치의 되는 주체사상을 주장했습니다.

    김일성을 그를 가장 믿고 빌릴 수 머리라며 각별한 신임을 나타냈고 자신의 친위대를 길러 낼 김일성 종합대학에 총장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러니까 공식과 비공식 자리에 김일성과 자주 모습을 드러내 최측근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고 인민회의 의장을 맡았던 1972년 이후 10년간 그는 전성기를 맞으며 서열13위의 권력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제3세계 70여개국에 1000여개의 주체사상 연구소를 설립해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와 체제 선전, 그리고 당 차원의 외교까지 도맡았습니다.

    85년 노동당 사상 담당 비서가 된 그는 김정일 후계 구도에 사상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출생했다며 우상화에 앞장섰고 영명한 지도자,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라는 경칭을 붙인 것도 그였습니다.

    김정일 최고 과업으로 꼽히는 3대 혁명 운동도 황장엽의 작품입니다.

    부인이 김정일의 가정 교사였고 김정일의 두번째 부인을 직접 중매하기도 하는 등 개인적 관계도 두터웠습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그의 활동 무대는 국내 사상 분야에서 대외 분야로 옮겨졌습니다.

    외국 사절을 면담할 뿐만 아니라 서유럽과 남미 등을 누비며 서구로 통하는 대외 창구 역할도 활발하게 수행했습니다.

    74살의 노학자는 공교롭게도 주체사상을 주재로 한 일본 학술회의를 마지막으로 북한과의 길었던 인연을 끊었습니다.

    MBC뉴스 성장경입니다.

    (성장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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