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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 장인숙씨 기자 간담회, 북한에 남은 둘째아들 걱정[김현경]

귀순 장인숙씨 기자 간담회, 북한에 남은 둘째아들 걱정[김현경]
입력 1997-09-12 | 수정 199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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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순 장인숙씨 기자 간담회, 북한에 남은 둘째아들 걱정]

    ● 앵커: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 90년 귀순한 큰아들 정현씨의 도움으로 최근 북한을 탈출한 어머니 장인숙씨와 두 아들이 오늘 기자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들은 이제 어렵게 다시 만난 기쁨을 나누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반쪽의 기쁨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북한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기쁘고도 가슴아픈 사연을 김현경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 기자: 꿈에도 잊은 적이 없는 큰아들과 생전 처음 보는 파란눈 며느리, 그리고 손주를 품에 안는 순간 장인숙씨는 벅찬 감격에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을 찾아 북경을 넘기로 한 그 시간,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못하고 붙잡힌 둘째 아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립니다.

    ● 장인숙(57): 난 못가겠다, 형님 두고 우리가 가면 형님 당장 죽는데 어떻게 가니?

    우리는 못 간다고 맨날 그랬어요.

    ● 기자: 주체사상 탑과 북한 최초의 입체 교차로를 설계해 훈장까지 받은 장인숙씨는 남편이 병으로 사망한 후 혼자서 네 아들을 최고 엘리트로 키워 냈습니다.

    그러나 부러울 것 없던 이들 가족은 정현씨가 귀순한 90년 엄동설한에 영문도 모른 채 평양에서 아오지 근처 온성의 탄광마을로 끌러 갔습니다.

    북한 최고의 만경대 혁명 학원을 나와 공군 조종사의 꿈을 키웠던 세째 아들 정룡씨는 하루아침에 양계장 노동자로 전락했고, 막내는 철도 선로공이 됐습니다.

    ● 정룡 (27) 장인숙씨 3남, 닭공장 노동자: 형에 대한 원망이 정말 대단히 컸습니다.

    막 죽이고 싶었고 그리고 형 때문에 하루 아침에 망한 생각을 하니...

    ● 기자: 단 한시도 가족을 잊은 적이 없던 정현씨는 교포를 통해 기어코 북한 가족을 찾아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이들을 서울로 탈출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 장인숙 (57): 우리 손주는 하나 밖에 없거든요.

    현재는 하나 있는 건
    지금 북한에 있으니까 그건 할 수 없구요.

    잘 키우겠어요.

    ● 기자: MBC뉴스 김현경입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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