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난 시대 화장을 생각한다]
● 앵커: 일요 뉴스데스크 집중취재입니다.
오늘 전국의 공원묘지에는 추석을 앞두고 올 여름 수해로 인해서 손상 입은 묘지를 미리 살펴보기 위해서 성묘객들이 한꺼번에 몰려 큰 혼잡을 빚습니다.
조상을 모시는 일은 중요하지만 매년 20만기의 무덤이 새로 생기다 보니 이제 우리 국토는 묘지 강산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 대안으로 화장제도는 보편화될 수 없는지, 화장을 생각한다.
박성제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 기자: 지난달 수해로 3,000여기의 묘지가 유실된 용미리 공원묘지입니다.
산사태에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간 무덤들이 아직도 흉한 상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말마다 삽과 곡괭이를 든 성묘객들이 여기저기서 구술 땀을 흘립니다.
● 김춘호(서울 화곡동): IMF가 닥쳐가지고 손수 하는 거예요.
사람을 사지 못하고 방법도 잘 모르고…
● 문경순(서울 성수동): 창호지로 다 닦아 가지고 다시 그 자리에 묻어줬습니다.
- 뼈를?
그렇죠, 뼈를 다시 모셨는데…
● 기자: 천막 아래에는 떠내려온 관들이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누워있습니다.
후손이 찾아오지 않을 경우 이 시신들은 이대로 추석을 맞아야만 합니다.
경기도 일대의 야산을 돌아보면 우리 묘지 문화의 또 다른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기업가의 부모가 묻혀있다는 용인의 한 호화 분묘, 산 한쪽을 드러내고 600평짜리 작은 공원을 꾸몄습니다.
대리석 치장과 대형 비석은 기본이고 고급 정원수를 계단식으로 둘러쌌습니다.
용인 주변에만 이런 호화 분묘가 수백 곳, 부동산 경기가 바닥이라는 요즘도 이 일대는 좋은 묘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립니다.
● 김성원(용인 부동산중개업 협회장): 산을 묘지로 구하시는 분들은 한 4천평 5천평, 가족 단위 묘지는 3백평에서 천5백평 사이로 지금 구하고 있습니다.
● 기자: 해마다 20만기의 묘지가 새로 생겨나고 대도시 주변은 무덤으로 뒤덮여가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땅에서 몰아내는 샘입니다.
화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은 많았지만 정작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지도층 인사들이 잇따른 화장 유언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SK그룹의 故 최종현 회장이 유언에 따라 화장장으로 장례를 치렀고, 삼성 이건희 회장, LG 구본모 회장이 화장유언을 남겼습니다.
고건 서울시장을 비롯한 교육, 종교계 인사 30여명도 화장을 약속했습니다.
보건복지부 직원들은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장관과 국장급을 포함해 200여명의 직원들이 흔쾌히 서명했습니다.
● 김모임(보건복지부 장관): 사회의 지도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고 나니까 한 책임을 한거 같아서 홀가분해요, 오히려.
기분 좋고.
● 기자: 화장장이나 납골당을 혐오시설로 여기는 사람들의 고정관념도 화장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LG그룹은 산림청과 협의해 경기도의 한 야산에 현대식 화장장과 납골당을 지으려 했지만 군 의회가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무산됐습니다.
그린벨트의 화장 시설을 지으려 해도 정부가 난색을 표합니다.
● 최대진(건설교통부 도시관리과 서기관): 왜 혐오시설을 그린벨트에 가지려고 하느냐, 그린벨트가 남들이 싫어하는 것을 갖다가 처리하는 쓰레기 처리장이냐 이렇게 생각을 할 우려도 있다 이거죠
● 기자: 좁은 공간에 촘촘한 서랍식으로 된 서양식 납골당에 대한 거부감도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한국식 가족 납골묘가 등장해 묘지문제의 새로운 대안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봉분의 모양을 살리면서 수십 개의 납골함을 한 무덤 안에 안치하는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기존의 묘지를 납골묘로 개조할 수 있다는 점이 큰 강점입니다.
● 전창옥(조양 장례서비스 대표): 내부를 계단식으로 구조를 만들어서 윗대서부터 아랫대까지 밑으로 계단식으로 내려서 쓰는.
● 기자: 수천년 지켜온 전통을 하루아침에 고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부터 한다는 마음을 먹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매장이나 화장이냐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송월주(조계종 총무원장): 전통적인 부처님 당시부터 화장을 했어요.
화장하나 매장하나 다 없어지긴 마찬가지입니다.
● 박인선(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 우리가 화장을 해도 분명히 부활하리라고 믿어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까
● 송길원(기독교 가정사역 연구소장 목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일에 앞장서서 세상을 빛 밝혀 나가야 되고 바른 생명관을 나눠야 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기자: MBC뉴스 박성제입니다.
(박성제 기자)
뉴스데스크
묘지난 시대 화장을 생각한다[박성제]
묘지난 시대 화장을 생각한다[박성제]
입력 1998-09-20 |
수정 199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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