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데스크

6.25 발발시 자진 귀국한 일본 유학생들 한자리에[김대경]

6.25 발발시 자진 귀국한 일본 유학생들 한자리에[김대경]
입력 1998-09-30 | 수정 1998-09-30
재생목록
    [6.25 발발시 자진 귀국한 일본 유학생들 한자리에]

    ● 앵커: 6.25가 터지자 일본에서 공부하던 우리 유학생들 가운데는 자진해서 현해탄을 건너와 전선에 뛰어든 학생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때의 생존자들이 오늘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김대경 기자입니다.

    ● 기자: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작전, 전쟁의 판도를 뒤바꾼 이 전투에 조국을 위해 젊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온 유학생들 79명이 끼어 있었습니다.

    전쟁소식을 접한 재일교포 청년과 학생 642명이 조총련의 협박 속에 참전을 결의하고 제 1진이 먼저 도착해 이 전투에 첫 출전했습니다.

    ● 배광도(학도의용군 일본지부장): 내일모레 조선 통일을 하는데 너희들 가족들 몰살을 한다 말이야, 협박을…

    ● 기자: 의용군 1, 2, 3진은 낙동강 전투에서 패한 북한군의 도주로를 차단한 채 북진을 계속해 50년 10월 원산 상륙작전과 11월 해산진 탈환작전 등에서 맹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싸우다 중공군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무려 135명이 군번도 없이 산화하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다 생존 의용군들 가운데 242명은 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약으로 주권을 회복한 일본이 입국을 거부하는 바람에 일본에 살고 있던 가족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 박만수: 만약에 돌아오면 내 영광이고, 죽더라도 어린 자식 잘 키워 성공하라고(부인에게) 말했다.

    ● 기자: 군번 없는 노병들로서 병역기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금의 세태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 김교인(재일 학도의용군 동지회장): 아무것도 나온 사람들은 눈에 안보였습니다.

    다만 공산당을 격퇴하고 나라를 지켜야 되겠다.

    ● 기자: MBC뉴스 김대경입니다.

    (김대경 기자)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