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도 생각했다]
● 앵커: 서울법대 故(고) 최종길 교수의 사인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근 30년 동안 최 교수의 가족이 겪었을 고통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30년의 한을 지고 망명까지 생각했었다는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김재용 기자입니다.
● 기자: 가로, 세로 1m, 불과 한 평도 채 안 되는 이 묘지는 고 최종길 교수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중앙정보부에 의한 타살, 28년 만에 결정적인 진술이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최 교수의 충격적인 사망은 아직도 가족들에게는 눈물과 분노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경희대 법대의 최광준 교수, 이제는 어엿한 법학자로 자리매김한 최종길 교수의 장남은 9살 때 겪은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 최광준 교수(故 최종길 교수 장남): 저의 아주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조차도 아버님이 어떤 분이셨고 아버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다하는 것을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기자: 결국 최 교수가 택한 건 독일유학길.
그것도 아버지가 다녔던 쾰른대로 향한 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습니다.
● 최광준 교수(故 최종길 교수 장남) : 나도 커서 아버님께서 어떤 책을 읽으셨었는지 한번 나도 그 내용을 알고 싶다, 하는 그런 바람이 있었고요.
● 기자: 이제는 고국을 떠나 미국에 체류하는 최종길 교수의 동생 종선 씨, 당시 중앙정보부 직원이었던 동생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겠다는 수사 관계자의 말만 믿고 형을 중앙정보부로 데려갔습니다.
● 최종선(故 최종길 교수 동생): 동료의 가족을 모셔다가 그렇게 가혹하게 있지도 않은 죄를 조작해서 뒤집어 씌우면서..죽음에 이르기까지 했을까… 정말 인간도 아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는 그럴 수 없다.
● 기자: 사건 내막의 핵심을 알고 있을 이후락 당시 중정부장과 김치열 차장은 대저택에 몸을 숨긴 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 인터뷰 : 어디 가셨다는데요?어디요?모르겠어요.외국에 가셨다구요?
네, 네
● 기자: 국가정보원은 오늘 최종길 교수의 사인 규명을 위해 의문사위원회에 협조하겠다고 밝혔지만 28년이나 흐른 지금 가족들의 슬픔을 어루만져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김재용 기자)
뉴스데스크
고 최종길 교수 가족 억울한 누명 망명도 생각[김재용]
고 최종길 교수 가족 억울한 누명 망명도 생각[김재용]
입력 2001-12-11 |
수정 200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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