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국내 최대 공업도시 울산공단 40년[한창완]
국내 최대 공업도시 울산공단 40년[한창완]
입력 2002-02-03 |
수정 200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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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공단 40년]
● 앵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오늘은 우리나라 공업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던 울산공단이 처음 건설되기 시작한 날입니다.
울산공단의 40년 역사를 한창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 기자: 1962년 2월 3일, 울산 매암동의 바닷가 언덕에서 공업입국의 대장정이 시작됐습니다.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이 가난에서 벗어나자고 벌인 국가사업이었습니다.
이후 허허벌판에서 68년과 72년, 단일공장 세계 최대 규모인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인구 8만의 소도시가 공업의 요충지로 변모해 갔습니다.
40년이 지나면서 울산은 공업생산에 70조 300억 원, 1,800여 개 제조업체에 종사자 17만 5,000명, 수출 200억 달러를 달성한 인구 100만의 국내 최대 공업도시가 됐습니다.
울산공단은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산업을 위한 오토밸리와 석유화학산업의 정밀화학 지원센터가 속속 들어설 예정입니다.
● 김인중(산업연구원 지역산업실장): 울산 경제의 공동화를 방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그 외에 무슨 어떤 지역의 파급효과, 경제의 파급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고요.
● 기자: 월드컵도 울산을 국제적 산업도시로 알리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울산공단은 미래에도 꺼지지 않는 우리나라 전통 산업의 심장부역할을 계속할 것입니다.
MBC뉴스 한창완입니다.
(한창완 기자)
● 앵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오늘은 우리나라 공업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던 울산공단이 처음 건설되기 시작한 날입니다.
울산공단의 40년 역사를 한창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 기자: 1962년 2월 3일, 울산 매암동의 바닷가 언덕에서 공업입국의 대장정이 시작됐습니다.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이 가난에서 벗어나자고 벌인 국가사업이었습니다.
이후 허허벌판에서 68년과 72년, 단일공장 세계 최대 규모인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인구 8만의 소도시가 공업의 요충지로 변모해 갔습니다.
40년이 지나면서 울산은 공업생산에 70조 300억 원, 1,800여 개 제조업체에 종사자 17만 5,000명, 수출 200억 달러를 달성한 인구 100만의 국내 최대 공업도시가 됐습니다.
울산공단은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산업을 위한 오토밸리와 석유화학산업의 정밀화학 지원센터가 속속 들어설 예정입니다.
● 김인중(산업연구원 지역산업실장): 울산 경제의 공동화를 방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그 외에 무슨 어떤 지역의 파급효과, 경제의 파급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고요.
● 기자: 월드컵도 울산을 국제적 산업도시로 알리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울산공단은 미래에도 꺼지지 않는 우리나라 전통 산업의 심장부역할을 계속할 것입니다.
MBC뉴스 한창완입니다.
(한창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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