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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김창용 관동군 악질 헌병이 특무대장[유재용]

김창용 관동군 악질 헌병이 특무대장[유재용]
입력 2002-03-05 | 수정 200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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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군 악질 헌병]

    ● 앵커: 이승만 정권 때 악명을 떨쳤던 김창용 특무대장, 잘 알고 계시죠?

    일제시대 때는 관동군헌병으로 독립군 소탕하는 데 앞장섰다가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위세를 업고 오히려 권력의 칼을 휘둘렀던 김창용.

    그의 행적은 우리 모순의 현대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친일파에 대한 단죄가 왜 진작 필요했던가를 일깨워주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유재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국군 기무사의 홈페이지로 들어가면 기무사의 창설자를 소개하는 빛바랜 사진이 나옵니다.

    대한민국 총무부대장 고 김창용 장군.

    일본군 헌병 하사에서 10년 만에 대한민국의 장군으로 숨가쁜 변신이었습니다.

    1940년, 김창용은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 헌병에 입대합니다.

    그는 헌병의 정보원으로 2년 동안 무려50여 개의 항일조직을 적발해 관동군 헌병 오장, 즉 하사관으로 특진하기까지 했습니다.

    ● 조문기(부민관 폭파의거 주역): 치가 떨리는 거죠.

    같은 동족인데 누구는 빼앗긴 나라 찾으려고 목숨 걸고 싸우는데 누구는 그걸 반대하고, 탄압하기 위해서 일제에 충성을 하고 있어...

    ● 기자: 하지만 광복 후 미군과 이승만 정부는 관동군 하사 김창용에게 반공주의자의 옷을 입혀친 일의 면죄부를 선사했습니다.

    여순반란사건을 거치면서 그는 군부에 대한 피의 숙청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오른팔이 되기에 이릅니다.

    ● 김영목(당시 미군 방첩대 근무): 독립된 행동으로써 직접 이 대통령한테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 또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는...

    ● 기자: 김창용은 이후 20만명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진 보도연맹 사건과 김 구 선생 암살, 민간인 고문치사사건 등의 배후 지목됐습니다.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던 김창용은 56년, 현역군인들에게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관동군 헌병에서 대한민국 특무부 대장에 이른 김창용의 변신, 그리고 그 변신을 가능케 했던 당시 배후권력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MBC뉴스 유재용입니다.

    (유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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