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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해야할 역사 친일파]박춘금/하판락 친일파 대이어 부귀[이용마]
[청산해야할 역사 친일파]박춘금/하판락 친일파 대이어 부귀[이용마]
입력 2002-03-12 |
수정 200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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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부귀영화]
● 앵커: 해방이 됐지만 독립운동가와 그 자손들은 대대로 고생하고 반대로 친일파들은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 우리의 잘못된 역사를 반증하는 말입니다.
이용마 기자가 그 아주 작은 실증적인 예를 보도합니다.
● 기자: 경남 밀양에 있는 한 야산에 40평 남짓 잘 꾸며진 묘가 하나 있습니다.
옆에 망자의 덕을 기리는 송덕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친일깡패 박춘군의 묘입니다.
송덕비에는 친일노동단체인 상해회를 조직하고 두 번씩이나 일본중의원을 지낸 그의 친일행적이 자랑스럽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최필숙 교사(밀양고): 해마다 4월쯤에 보면 일본인들이 와서 거기 참배를 하고 관리인한테 관리비를 주고 간다고 제가 알고 있습니다.
● 기자: 송덕비를 읽고 있는 이 사람은 박춘금이 친일파를 동원해 아시아민족분격대회를 열 때 그에게 폭탄을 던졌던 장본인 조문기 옹입니다.
● 조문기 이사장(민족문제 연구소): 3만 원인가 5만 원인 현상금 그 위에다가 이 사람이 날 하루라도 빨리 잡으라고 2만 원의 사재를 보탰어요.
● 기자: 조 옹은 자신이 살아 있는 한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이 송덕비를 없애겠다고 다짐합니다.
● 조문기 이사장(민족문제 연구소): 과연 이 나라는 아직 독립 멀었다.
또 아직도 친일공화국이다.
● 기자: 부산시 동구 좌천동, 올해 79의 이광우 씨가 사는 곳입니다.
1942년 17살의 나이로 비밀결사대를 결성한 이광우는 부산항을 무대로 항일전단을 뿌렸다가 체포됐습니다.
이때 고문을 담당했던 사람은 조선인 고등경찰 하판락이었습니다.
● 이광우: 원체 고문 많이 당했습니다.
죽은 사람 많습니다.
그놈 참 악질입니다.
독한 놈입니다.
● 기자: 주사기로 피를 뽑는 착혈고문, 그래서 고문귀로 불리웠던 하판락은 해방 후 체포됐지만 반민특위가 와해되면서 풀려났습니다.
하판락은 미 군정 하에서 경찰 간부로 다시 사업가로 지역 유지로 성공적인 변신을 거듭했습니다.
● 하판락: 먹고 살기 위해 가지고 그저 세력에 아부했다는 정도죠...
뭐 사실 우리도 뭐.
● 기자: 독립운동가는 대를 이어 빌어먹고 친일파는 죽어서까지 영화를 누리는 나라, 우리 역사의 현실입니다.
MBC뉴스 이용마입니다.
(이용마 기자)
● 앵커: 해방이 됐지만 독립운동가와 그 자손들은 대대로 고생하고 반대로 친일파들은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 우리의 잘못된 역사를 반증하는 말입니다.
이용마 기자가 그 아주 작은 실증적인 예를 보도합니다.
● 기자: 경남 밀양에 있는 한 야산에 40평 남짓 잘 꾸며진 묘가 하나 있습니다.
옆에 망자의 덕을 기리는 송덕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친일깡패 박춘군의 묘입니다.
송덕비에는 친일노동단체인 상해회를 조직하고 두 번씩이나 일본중의원을 지낸 그의 친일행적이 자랑스럽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최필숙 교사(밀양고): 해마다 4월쯤에 보면 일본인들이 와서 거기 참배를 하고 관리인한테 관리비를 주고 간다고 제가 알고 있습니다.
● 기자: 송덕비를 읽고 있는 이 사람은 박춘금이 친일파를 동원해 아시아민족분격대회를 열 때 그에게 폭탄을 던졌던 장본인 조문기 옹입니다.
● 조문기 이사장(민족문제 연구소): 3만 원인가 5만 원인 현상금 그 위에다가 이 사람이 날 하루라도 빨리 잡으라고 2만 원의 사재를 보탰어요.
● 기자: 조 옹은 자신이 살아 있는 한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이 송덕비를 없애겠다고 다짐합니다.
● 조문기 이사장(민족문제 연구소): 과연 이 나라는 아직 독립 멀었다.
또 아직도 친일공화국이다.
● 기자: 부산시 동구 좌천동, 올해 79의 이광우 씨가 사는 곳입니다.
1942년 17살의 나이로 비밀결사대를 결성한 이광우는 부산항을 무대로 항일전단을 뿌렸다가 체포됐습니다.
이때 고문을 담당했던 사람은 조선인 고등경찰 하판락이었습니다.
● 이광우: 원체 고문 많이 당했습니다.
죽은 사람 많습니다.
그놈 참 악질입니다.
독한 놈입니다.
● 기자: 주사기로 피를 뽑는 착혈고문, 그래서 고문귀로 불리웠던 하판락은 해방 후 체포됐지만 반민특위가 와해되면서 풀려났습니다.
하판락은 미 군정 하에서 경찰 간부로 다시 사업가로 지역 유지로 성공적인 변신을 거듭했습니다.
● 하판락: 먹고 살기 위해 가지고 그저 세력에 아부했다는 정도죠...
뭐 사실 우리도 뭐.
● 기자: 독립운동가는 대를 이어 빌어먹고 친일파는 죽어서까지 영화를 누리는 나라, 우리 역사의 현실입니다.
MBC뉴스 이용마입니다.
(이용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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