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LA 흑인 폭동 10년 후 코리아타운[황희만]
LA 흑인 폭동 10년 후 코리아타운[황희만]
입력 2002-04-28 |
수정 200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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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폭동 10년]
● 앵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오늘 미국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최대 피해자였던 우리 한인들은 폭동 이후 어떻게 화합해 왔는지 황희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 특파원: 1992년 4월 29일 흑인 밀집지역인 사우스 센트럴에서 시작된 LA폭동은 삽시간에 인근 코리아타운을 삼켜버렸습니다.
전체 7억 달러의 피해액 가운데 4억 달러가 한인들 피해였습니다.
10년이 지난 오늘 코리아타운의 피해 건물은 모두 복구됐고 올림픽거리를 중심으로 코리아타운은 새로운 활력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LA폭동의 진원지인 사우스센트럴지역입니다.
이곳은 10년 전과 마찬지로 저소득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곳에서 생업의 터전을 잡아왔던 한인들은 이제는 좀 더 지역 주민과 화합하며 갈등을 줄이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 윤달섭: 좀 덜 먹고 조금 나눠주는 마음을 먹으면…
나이먹은 사람들은 한국 사람보다 더 좋아요.
● 특파원: 주민들도 한인가게 주인들과 허물없는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 LA시민: 윤 씨에 대한 나쁜 말 하는 거 들어보지 못했다.
모두 그를 좋아한다.
● 특파원: 한인과 흑인 사이도 교회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흑 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부단히 펼쳐와 지역주민과 한인 업주 간의 갈등은 많이 해소됐습니다.
그러나 상호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로 상대방을 보는 일방적인 관념은 흑백갈등이 쉽사리 해소되지 못하는 것처럼 인종 간, 문화 간 차이에서 오는 편견에 아직도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이 양측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MBC뉴스 황희만입니다.
(황희만 특파원)
● 앵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오늘 미국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최대 피해자였던 우리 한인들은 폭동 이후 어떻게 화합해 왔는지 황희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 특파원: 1992년 4월 29일 흑인 밀집지역인 사우스 센트럴에서 시작된 LA폭동은 삽시간에 인근 코리아타운을 삼켜버렸습니다.
전체 7억 달러의 피해액 가운데 4억 달러가 한인들 피해였습니다.
10년이 지난 오늘 코리아타운의 피해 건물은 모두 복구됐고 올림픽거리를 중심으로 코리아타운은 새로운 활력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LA폭동의 진원지인 사우스센트럴지역입니다.
이곳은 10년 전과 마찬지로 저소득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곳에서 생업의 터전을 잡아왔던 한인들은 이제는 좀 더 지역 주민과 화합하며 갈등을 줄이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 윤달섭: 좀 덜 먹고 조금 나눠주는 마음을 먹으면…
나이먹은 사람들은 한국 사람보다 더 좋아요.
● 특파원: 주민들도 한인가게 주인들과 허물없는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 LA시민: 윤 씨에 대한 나쁜 말 하는 거 들어보지 못했다.
모두 그를 좋아한다.
● 특파원: 한인과 흑인 사이도 교회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흑 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부단히 펼쳐와 지역주민과 한인 업주 간의 갈등은 많이 해소됐습니다.
그러나 상호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로 상대방을 보는 일방적인 관념은 흑백갈등이 쉽사리 해소되지 못하는 것처럼 인종 간, 문화 간 차이에서 오는 편견에 아직도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이 양측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MBC뉴스 황희만입니다.
(황희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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