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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거리 응원전 다시 그 열기로[금기종]
월드컵 거리 응원전 다시 그 열기로[금기종]
입력 2003-05-30 |
수정 200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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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거리 응원전 다시 그 열기로]
● 앵커: 월드컵 경기만큼이나 당시 세계 이목을 끌었던 것은 우리의 하나된 거리 응원이었습니다.
참가 연인원은 무려 2300만여 명.
그 열정과 감격의 축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겠습니다.
금기종 기자입니다.
● 기자: 한국전이 있는 날, 서울 광화문 시청 일대는 이른 아침부터 붉은 꽃밭이었습니다.
경기 시작 몇 시간 전이면 이내 앉을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야구장, 학교 운동장, 바닷가 백사장을 가릴 것 없이 부산, 대구, 광주를 따질 것 없이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전국의 모든 공터는 붉은 악마의 응원 장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본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걸고 목이 터져라 하나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 문민창 (붉은악마 레드포스 팀장): 서로 막 껴안고 기차놀이 같은 것도 많이 하고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많이 그렇게 친해질 수가 있었고
.
● 기자: 예선 첫 승부터 4강까지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 이연경(회사원): 모르는 사람 보면 그냥 그때 일이 생각나면서 그냥 다시 마음이 막 설레지고 참 이렇게 모든 일을 다 잊게 돼요, 축구를 보면…
● 기자: 폴란드 전 당시 57만 명이던 거리응원 인파는 16강, 8강을 거치며 급격히 불어나 4강 독일 전에서는 650만 명으로 절정을 이뤘습니다.
연인원은 2,300만 명.
이 땅이 열린 이래 가장 많은 인파였습니다.
4강의 신화를 창조한 장외의 영웅,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는 꿈은 또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MBC뉴스 금기종입니다.
(금기종 기자)
● 앵커: 월드컵 경기만큼이나 당시 세계 이목을 끌었던 것은 우리의 하나된 거리 응원이었습니다.
참가 연인원은 무려 2300만여 명.
그 열정과 감격의 축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겠습니다.
금기종 기자입니다.
● 기자: 한국전이 있는 날, 서울 광화문 시청 일대는 이른 아침부터 붉은 꽃밭이었습니다.
경기 시작 몇 시간 전이면 이내 앉을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야구장, 학교 운동장, 바닷가 백사장을 가릴 것 없이 부산, 대구, 광주를 따질 것 없이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전국의 모든 공터는 붉은 악마의 응원 장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본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걸고 목이 터져라 하나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 문민창 (붉은악마 레드포스 팀장): 서로 막 껴안고 기차놀이 같은 것도 많이 하고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많이 그렇게 친해질 수가 있었고
.
● 기자: 예선 첫 승부터 4강까지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 이연경(회사원): 모르는 사람 보면 그냥 그때 일이 생각나면서 그냥 다시 마음이 막 설레지고 참 이렇게 모든 일을 다 잊게 돼요, 축구를 보면…
● 기자: 폴란드 전 당시 57만 명이던 거리응원 인파는 16강, 8강을 거치며 급격히 불어나 4강 독일 전에서는 650만 명으로 절정을 이뤘습니다.
연인원은 2,300만 명.
이 땅이 열린 이래 가장 많은 인파였습니다.
4강의 신화를 창조한 장외의 영웅,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는 꿈은 또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MBC뉴스 금기종입니다.
(금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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