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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 첫 화상상봉 현장[이필희]
남북 이산가족 첫 화상상봉 현장[이필희]
입력 2005-08-15 |
수정 200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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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 첫 화상상봉 현장]
● 앵커: 광복 60주년을 맞은 오늘 남북이산가족 간에 처음으로 화상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살아 있었구나, 상봉장은 또다시 눈물바다가 됐습니다마는 화면으로 달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상봉이었습니다.
이필희 기자입니다.
● 기자: 사진 속 앳된 청년은 백발의 칠순 노인으로 나타났습니다.
55년 만에 화면으로 오빠를 마주한 여동생은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 정영애: 오빠, 오빠, 이 사진 기억나? 우리 만나야 돼.
만나야 돼.
● 정병연: 나 너희들 끌어안고 울자면 끝이 없어 그러니 울지 말고 내 말 들어.
● 기자: 일흔을 훌쩍 넘긴 북녘의 딸들은 애타게 노모를 불렀습니다.
59년 동안을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온 딸이었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진 98살의 노모는 말한마디 제대로 못 건넸습니다.
● 인터뷰: 어머니.
● 기자: 대기실에서 상봉을 기다리던 이산가족들은 연신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보며 긴장과 설렘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김용권: 우리도 형님 제사를 지냈거든요.
이렇게 또 살았다고 하니까 반갑기도 하고 참 이상하다, 이런 생각도 들고요.
● 기자: 서울과 부산, 대전 등 전국 11곳의 상봉장을 평양과 연결한 오늘 화상상봉에는 남과 북의 40가족, 22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 최원희: 언제든지 자유롭게 가서 내 마음껏 얘기할 수 있을 때가 나는 그것을 원하지.
● 기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해마다 4, 5000명의 이산가족이 사망하고 있다며 연중 화상상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MBC뉴스 이필희입니다.
(이필희 기자)
● 앵커: 광복 60주년을 맞은 오늘 남북이산가족 간에 처음으로 화상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살아 있었구나, 상봉장은 또다시 눈물바다가 됐습니다마는 화면으로 달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상봉이었습니다.
이필희 기자입니다.
● 기자: 사진 속 앳된 청년은 백발의 칠순 노인으로 나타났습니다.
55년 만에 화면으로 오빠를 마주한 여동생은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 정영애: 오빠, 오빠, 이 사진 기억나? 우리 만나야 돼.
만나야 돼.
● 정병연: 나 너희들 끌어안고 울자면 끝이 없어 그러니 울지 말고 내 말 들어.
● 기자: 일흔을 훌쩍 넘긴 북녘의 딸들은 애타게 노모를 불렀습니다.
59년 동안을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온 딸이었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진 98살의 노모는 말한마디 제대로 못 건넸습니다.
● 인터뷰: 어머니.
● 기자: 대기실에서 상봉을 기다리던 이산가족들은 연신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보며 긴장과 설렘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김용권: 우리도 형님 제사를 지냈거든요.
이렇게 또 살았다고 하니까 반갑기도 하고 참 이상하다, 이런 생각도 들고요.
● 기자: 서울과 부산, 대전 등 전국 11곳의 상봉장을 평양과 연결한 오늘 화상상봉에는 남과 북의 40가족, 22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 최원희: 언제든지 자유롭게 가서 내 마음껏 얘기할 수 있을 때가 나는 그것을 원하지.
● 기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해마다 4, 5000명의 이산가족이 사망하고 있다며 연중 화상상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MBC뉴스 이필희입니다.
(이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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