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정운기 기자
정운기 기자
백제 사리함, 천4백 년 만에 햇빛
백제 사리함, 천4백 년 만에 햇빛
입력
2007-10-24 21:52
|
수정 2007-10-2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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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1400년 전 찬란한 백제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리함이 발견됐습니다.
금동대향로 발굴 이래 최대의 성과로 꼽히고 있습니다.
정운기 기자가 전합니다.
천4백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사리함입니다. 백제시대 왕실 사찰인 충남 부여의 왕흥사 터에서 발견됐습니다.
각각 금과 은, 청동으로 만들어져 3중으로 담겨 있었고 사리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금·은·동 3중의 사리그릇은 이곳 왕흥사 목탑지의 가장 중심부에 묻혀 있었습니다.
● 유홍준(문화재청장) : "사리함이 나온 577년을 놓고 보면 당시 세계 최고의 금속공예 기술이었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겉에는 <서기577년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해 절을 세우고 사리를 묻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에 따라 왕흥사의 정확한 축조시기와 창왕이 일본에 사신으로 보낸 아좌태좌 이외에 또 다른 왕자를 두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등 백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안휘준(서울대 명예교수) : "전에 우리가 경험했던 백제향로가 발굴될 당시의 감격을, 말하자면 배로 느낀다고 할까..."
왕흥사 터에서는 금과 은, 청동과 옥으로 정교하게 만든 각종 장신구와 다양한 색상의 구슬도 많이 출토됐습니다.
MBC 뉴스 정운기입니다.
금동대향로 발굴 이래 최대의 성과로 꼽히고 있습니다.
정운기 기자가 전합니다.
천4백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사리함입니다. 백제시대 왕실 사찰인 충남 부여의 왕흥사 터에서 발견됐습니다.
각각 금과 은, 청동으로 만들어져 3중으로 담겨 있었고 사리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금·은·동 3중의 사리그릇은 이곳 왕흥사 목탑지의 가장 중심부에 묻혀 있었습니다.
● 유홍준(문화재청장) : "사리함이 나온 577년을 놓고 보면 당시 세계 최고의 금속공예 기술이었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겉에는 <서기577년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해 절을 세우고 사리를 묻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에 따라 왕흥사의 정확한 축조시기와 창왕이 일본에 사신으로 보낸 아좌태좌 이외에 또 다른 왕자를 두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등 백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안휘준(서울대 명예교수) : "전에 우리가 경험했던 백제향로가 발굴될 당시의 감격을, 말하자면 배로 느낀다고 할까..."
왕흥사 터에서는 금과 은, 청동과 옥으로 정교하게 만든 각종 장신구와 다양한 색상의 구슬도 많이 출토됐습니다.
MBC 뉴스 정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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