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김성우 기자
김성우 기자
5시간 만에 잃어버린 6백 년
5시간 만에 잃어버린 6백 년
입력
2008-02-11 22:09
|
수정 2008-02-1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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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수 앵커 : 숭례문은 지난 6백 년 동안 온갖 난리를 다 겪으면서 묵묵히 우리와 함께 해온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김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숭례문은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에 완성됐으니, 몇 차례 개, 보수는 거쳤지만 지은 지 600년이 넘습니다.
북한산-경복궁-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조선왕궁 중심축의 정문으로 육조 거리를 떠안는 당당한 형상은 조선의 개국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 김봉렬 (문화재위원) : "성문 중에서 가장 당당하고 아마 여기서 새 나라의 기운이라고 할까요, 조선을 건국했던 그런 자신감이랄까, 이런 걸 정말 읽을 수가 있었던 건물이었거든요."
숭례문은 기구한 조선의 역사를 함께 했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왜군과 청나라 군대의 한양 입성을 지켜봤고, 1907년 일본 왕세자 요시히토는 머리를 숙이고 지날 수 없다며 성곽을 헐어냈습니다.
이후 전찻길에 도로까지 깔리면서 시내 한복판에 고립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크게 파손돼 1961년부터 3년간 큰 수술을 받았지만 되살아났습니다.
1962년 국보 1호로 지정되면서 시민들과 더욱 친숙해지는 계기를 맞습니다.
2005년 5월, 숭례문은 100년 만에 빗장을 풀고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개방 2년 남짓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화마. 사람들이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앞에서 그것도 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MBC 뉴스 김성우입니다.
김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숭례문은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에 완성됐으니, 몇 차례 개, 보수는 거쳤지만 지은 지 600년이 넘습니다.
북한산-경복궁-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조선왕궁 중심축의 정문으로 육조 거리를 떠안는 당당한 형상은 조선의 개국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 김봉렬 (문화재위원) : "성문 중에서 가장 당당하고 아마 여기서 새 나라의 기운이라고 할까요, 조선을 건국했던 그런 자신감이랄까, 이런 걸 정말 읽을 수가 있었던 건물이었거든요."
숭례문은 기구한 조선의 역사를 함께 했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왜군과 청나라 군대의 한양 입성을 지켜봤고, 1907년 일본 왕세자 요시히토는 머리를 숙이고 지날 수 없다며 성곽을 헐어냈습니다.
이후 전찻길에 도로까지 깔리면서 시내 한복판에 고립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크게 파손돼 1961년부터 3년간 큰 수술을 받았지만 되살아났습니다.
1962년 국보 1호로 지정되면서 시민들과 더욱 친숙해지는 계기를 맞습니다.
2005년 5월, 숭례문은 100년 만에 빗장을 풀고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개방 2년 남짓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화마. 사람들이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앞에서 그것도 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MBC 뉴스 김성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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