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윤효정 기자
윤효정 기자
입시로 본 60년
입시로 본 60년
입력
2008-08-13 23:58
|
수정 2008-08-1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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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
내일은 여자 양궁 개인전이 열립니다.
우리 여자 궁사들의 멋지고 시원한 활솜씨가 또 한 번 발휘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ANC▶
우리 정부 수립 60 시리즈, 오늘은 중학부터 대학까지 입시정책을 살펴보겠습니다.
끊임없이 바꿔쓰고 있지만 지금도 해답을 찾지 못한 국민숙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윤효정 기자의 보도입니다.
◀VCR▶
1964년 12월, 경기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처음으로 복수정답을 허용하는
이른바 '무즙 파동' 일어났습니다.
엿을 만들 때 엿기름 대신 쓸 수 있는 것을
묻는 문제에 디아스타제를 정답으로,
무즙은 틀린 것으로 처리하자,
이 문제 하나로 떨어진 학생 학부모들이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있다며 반발한
것입니다.
◀SYN▶
"'정답을 바로 가려라'하며 교장실에서
농성을 했고 끝내는 소송까지 벌어져
결국 39명의 불합격생이 경기중학에 입학한
이 사건은..."
이처럼 중학교 입시가 과열되고,
당시 국민학생들의 과외가 극성을 부리자
1968년 7월 15일, 정부는 중학교 무시험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뒤를 이어 정부는 1974년 서울, 부산을
시작으로 고등학교에까지 평준화를 도입합니다.
◀INT▶이원숙 / 고등학교 평준화 1세대
"해방감이 있었죠. 일단 시험에서 벗어난다는.
그래도 학교에선 선배들도 그렇고 선생님도
좀 차별한다고 해야하나...그런 것도 있고..."
해방 이후 최초의 대학입시제도는 1945년,
대학별 단독시험.
그러나 대학이 원하는대로
학생을 뽑는 이 제도는 각종 입시비리를 겪으며
10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그러다 1969년에 대학입학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 제도가 완성됩니다.
대학 본고사는 난이도가 높아서
고액과외가 성행해 빈부간 위화감이 극심했고
재수생이 급증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사교육 성행을 막고자 1980년, 당시 군사정부는
이른바 7.30 교육 개혁조치를 통해
과외 전면 금지를 선포합니다.
◀SYN▶ 오자복 당시 문공위원장
"공사립 학교에 재직하는 모든 교수와 교사의
과외지도행위를 일체 금지하며
위반자는 교직을 떠나도록 할 것입니다"
본고사의 부작용으로 1980년 도입된 학력고사는
10년 이상 순탄하게 치러졌지만,
1992년 후기 시험을 하루 앞두고
시험지를 도난당하는 초유의 사건으로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INT▶ 윤형섭 당시 교육부 장관
"문제지가 도난 당한 이상
후기대의 학력고사를 예정대로 실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부득이..."
이로 인해 전국 모든 대학의 후기 시험이
20일씩 연기되는 등
최악의 입시부정사건으로 기록됐습니다.
학력고사는 1993년 수능으로 대체됩니다.
지금은 대학 본고사 부활 논란과 함께
특목고, 국제중 입학 경쟁이 과열되면서,
중 고등학교 입시 부활 논란이 진행중입니다.
MBC 뉴스 윤효정입니다.
내일은 여자 양궁 개인전이 열립니다.
우리 여자 궁사들의 멋지고 시원한 활솜씨가 또 한 번 발휘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ANC▶
우리 정부 수립 60 시리즈, 오늘은 중학부터 대학까지 입시정책을 살펴보겠습니다.
끊임없이 바꿔쓰고 있지만 지금도 해답을 찾지 못한 국민숙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윤효정 기자의 보도입니다.
◀VCR▶
1964년 12월, 경기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처음으로 복수정답을 허용하는
이른바 '무즙 파동' 일어났습니다.
엿을 만들 때 엿기름 대신 쓸 수 있는 것을
묻는 문제에 디아스타제를 정답으로,
무즙은 틀린 것으로 처리하자,
이 문제 하나로 떨어진 학생 학부모들이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있다며 반발한
것입니다.
◀SYN▶
"'정답을 바로 가려라'하며 교장실에서
농성을 했고 끝내는 소송까지 벌어져
결국 39명의 불합격생이 경기중학에 입학한
이 사건은..."
이처럼 중학교 입시가 과열되고,
당시 국민학생들의 과외가 극성을 부리자
1968년 7월 15일, 정부는 중학교 무시험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뒤를 이어 정부는 1974년 서울, 부산을
시작으로 고등학교에까지 평준화를 도입합니다.
◀INT▶이원숙 / 고등학교 평준화 1세대
"해방감이 있었죠. 일단 시험에서 벗어난다는.
그래도 학교에선 선배들도 그렇고 선생님도
좀 차별한다고 해야하나...그런 것도 있고..."
해방 이후 최초의 대학입시제도는 1945년,
대학별 단독시험.
그러나 대학이 원하는대로
학생을 뽑는 이 제도는 각종 입시비리를 겪으며
10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그러다 1969년에 대학입학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 제도가 완성됩니다.
대학 본고사는 난이도가 높아서
고액과외가 성행해 빈부간 위화감이 극심했고
재수생이 급증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사교육 성행을 막고자 1980년, 당시 군사정부는
이른바 7.30 교육 개혁조치를 통해
과외 전면 금지를 선포합니다.
◀SYN▶ 오자복 당시 문공위원장
"공사립 학교에 재직하는 모든 교수와 교사의
과외지도행위를 일체 금지하며
위반자는 교직을 떠나도록 할 것입니다"
본고사의 부작용으로 1980년 도입된 학력고사는
10년 이상 순탄하게 치러졌지만,
1992년 후기 시험을 하루 앞두고
시험지를 도난당하는 초유의 사건으로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INT▶ 윤형섭 당시 교육부 장관
"문제지가 도난 당한 이상
후기대의 학력고사를 예정대로 실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부득이..."
이로 인해 전국 모든 대학의 후기 시험이
20일씩 연기되는 등
최악의 입시부정사건으로 기록됐습니다.
학력고사는 1993년 수능으로 대체됩니다.
지금은 대학 본고사 부활 논란과 함께
특목고, 국제중 입학 경쟁이 과열되면서,
중 고등학교 입시 부활 논란이 진행중입니다.
MBC 뉴스 윤효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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