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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강명일 기자

역경 이겨낸 '인동초'의 삶

역경 이겨낸 '인동초'의 삶
입력 2009-08-18 21:43 | 수정 2009-08-18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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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C▶

    김 전 대통령의 일생은 모진 한파에 굴하지 않고 인고의 꽃을 피워내는 인동초에 비유되곤 합니다.

    끝없는 도전과 좌절, 열정으로 일궈낸 그의 삶을 강명일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VCR▶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25년 남도의 외딴섬 하의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목포상고를 나와 해운회사를 운영하는
    청년 실업가로 성장한 뒤
    서른 살의 나이에 정치에 도전했습니다.

    세 차례 연거푸 낙선,
    그러나 좌절하지 않은 그는 61년
    마침내 보궐선거에 당선됐고
    70년에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제창하면서
    야당의 대권후보로 떠오릅니다.

    ◀SYN▶ 7대 대선 장충단 유세(1971년 4월)
    "그 사람들이 밤잠을 안 자고
    잡으러 다니는 건 공산당 간첩이 아니라
    신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이다."

    부정선거 시비 끝에 박정희 후보에게
    간발의 차로 낙선한 그를 기다린 것은
    험난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대선 한 달 뒤 발생한 의문의 교통사고,
    그리고 2년 뒤에 일어난 도쿄 납치사건으로
    연이어 죽음의 위기를 맞았고
    광주 민주화운동 직후에는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구사일생으로 미국 망명길에 오릅니다.

    다시 돌아온 그는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두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분루를 삼켰고,
    5년 뒤 세 번째 대권 도전도
    3당 합당을 이룬 김영삼 후보에 밀려
    좌절됐습니다.

    ◀SYN▶ 정계은퇴 선언/1992년 12월
    "저는 또 다시 국민 여러분의 신임을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정계은퇴 선언 후 영국으로 떠났던 노정객은
    약속 파기라는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마지막 도전에 나섰고,
    결국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인 수평적 정권교체였습니다.

    ◀SYN▶ 15대 대통령 취임연설/1998년 2월
    "대한민국 영광을 세계에 드높이겠습니다."

    재임 기간에 IMF 극복, 남북정상회담 개최,
    노벨평화상 수상 등 빛나는 치적을 남겼지만
    아들들이 각종 비리로 잇따라 구속되면서
    임기 후반부는 상처로 얼룩지기도 했습니다.

    ◀SYN▶ 대국민 사과성명 발표/2002년 6월
    "모두 제 부족과 불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퇴임 후에도 국제적 인권 지도자이자
    민주 세력의 상징으로서
    그의 활동과 영향력은 이어졌습니다.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끝내 꽃을 피운
    그의 생애가 인동초의 삶이었다면
    청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가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행동하는 양심'이었습니다.

    MBC 뉴스 강명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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