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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전체가 지하요새' 대만의 금문도를 가다

'섬 전체가 지하요새' 대만의 금문도를 가다
입력 2010-12-05 20:46 | 수정 2010-12-0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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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C▶

    연평도를 비롯한 서북도서 일부의 요새화가 적극 검토되면서 대만의 금문도란 섬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중국과 수십 년 전쟁을 치르며 섬 전체가 지하 요새로 만들어졌는데요.

    그 역사의 현장에 이호찬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VCR▶

    대만에서 190킬로미터, 중국 본토에선
    불과 1.8킬로미터 떨어진 대만 섬,
    금문도.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지난 1949년부터
    중국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1958년엔 무려 47만 발의 포탄이
    쏟아졌습니다.

    ◀SYN▶ 원쓰중(85세)/'금문도 전투' 참전 군인
    "사상자가 800명이었다. 금문도의
    모든 마을이 공격당했고,
    집들이 다 무너졌다."

    대만은 이후 본격적으로
    지하 요새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금문도 내 한 민간 대피소.

    폭 1미터, 높이 2미터 지하 통로가
    2킬로미터 넘게 이어져 있습니다.

    지금도 긴급 구호 장비와
    비상식량 등이 깨끗이 준비돼 있고,
    전투 당시 회의 장소와
    무기 창고도 보존돼 있습니다.

    ◀SYN▶ 쉬원카이/대피소 해설원
    "갱도들이 도시 곳곳으로
    연결돼 있어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쉽게 대피할 수 있다."

    금문도 내 이런 지하 민간 대피소만
    12곳, 길이를 합치면 10킬로미터,
    금문도 전체를 거미줄처럼
    이어 놨습니다.

    집집마다 지하 방공호 설치는
    의무였습니다.

    ◀SYN▶ 쉐수완(79세)/금문도 주민
    "첫번째 (폭격) 소리가 들리면
    바로 (방공호로) 내려왔다.
    두려워서 잠을 못 잤다."

    군사 기지도 지하 요새에 설치됐고,
    보급선에 대한 폭격을 막기 위해
    수로도 만들어졌습니다.

    ◀SYN▶ 차이위준/구산갱도 해설원
    "(군량미를 실은)배를 숨기지 않으면
    (중국과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적에게 발각될 수 있다.
    보급선이 공격당하면 도민 10여만 명이
    굶어 죽는다."

    이런 요새 공사는 1992년까지
    3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10년 전 중국 대륙과의
    직항로가 열리고
    2004년 중국인 관광이 시작되면서
    지하 요새는 한해 수십만 명이 찾는
    관광 상품이 됐습니다.

    ◀SYN▶ 쉬지진/금문현정부 과장
    "평화란 첨단무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군사력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교류를 통해서 온 것이다."

    금문도의 지하 요새들은 이제
    역사의 유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거꾸로
    연평도의 요새화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퍼 보입니다.

    대만 금문도에서
    MBC뉴스 이호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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