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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박충희 기자

숙청과 복권, 그리고 처형…파란만장했던 장성택의 삶

숙청과 복권, 그리고 처형…파란만장했던 장성택의 삶
입력 2013-12-13 20:28 | 수정 2013-12-1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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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C▶

    장성택이 실세 중에 실세였던 이유는 그가 북한의 이른바 '로열패밀리'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지 못한 올해 68세 장성택의 인생굴곡 박충희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VCR▶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장성택은 1972년 김일성 종합대학을 다니면서 동갑인 김일성의 딸 김경희와 연애를 했습니다.

    김일성이 반대했지만 김정일의 도움으로 결혼에 성공한 장성택은 이른바 '로열패밀리'에 합류하면서 신분이 수직 상승합니다.

    1986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1992년에는 당 중앙위 중앙위원으로 발탁됩니다.

    처남인 김정일이 집권한 뒤 1995년,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2인자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SYN▶ 후지모토 겐지 2010년 12월/김정일의 요리사
    "북한 내 절대적인 2인자는 장성택입니다. 김정일 장군의 다음이죠. 그를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2인자 권력을 누렸던 장성택은 지난 2004년 권력 남용 혐의로 김정일의 눈밖에 나면서 좌천을 당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의 세습 작업을 주도하면서 당·정·군에 측근 세력을 포진시키고 다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습니다.

    술과 여성 편력으로 아내 김경희와 잦은 불화를 겪으면서 둘의 별거는 공공연히 알려졌고, 2006년엔 해외 유학 중이던 외동딸이 자살을 하는 등 실패한 2인자의 가정사 역시 평탄치 않았습니다.

    MBC뉴스 박충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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