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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보는 구로공단 50년…31개 업체가 1만개로 껑충

숫자로 보는 구로공단 50년…31개 업체가 1만개로 껑충
입력 2014-09-15 18:22 | 수정 2014-09-1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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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구로공단, 지난 50년 동안 여러모로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규모부터 살펴볼까요?

    지난 1964년 구로공단이 처음 조성됐을 당시엔 31개의 업체로 시작했습니다.

    그랬던 것이 최근엔 만 개가 넘는 업체가 이곳에 입주해 있습니다.

    전체 업체 수로 따져보면, 50년 동안, 384배나 늘어난 거죠.

    고용 규모도 그만큼 많이 늘어났는데요.

    자료를 보면서 살펴보겠습니다.

    1960년대,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2천 명 정도였는데요,

    요새는 얼마나 될까요?

    지난해 기준인데요, 16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처음 구로공단이 조성될 당시에 비해, 근무자가 무려 80배가 늘어난 거죠.

    이번에는 구로공단의 50년 변천사를 숫자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선경 아나운서, 구로공단의 역사, 정리해주시죠.

    ◀ 유선경 아나운서 ▶

    구로공단의 역사, 숫자 1과 관련이 있습니다.

    네, 지난 1964년 조성된 구로공단은 '1'번지 산업공단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단지입니다.

    지난 1964년 9월 14일, 수출산업공업단지 개발 조성법이 제정되면서 구로공단이 생겨난 건데요,

    1960년대, 당시 자본이 없었던 정부는, 재일교포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해 구로공단을 만들게 됩니다.

    1970년대 들어서는 구로공단의 수출액이 국가수출의 '10 '%를 차지할 만큼 전성기를 맞이하는데요.

    당시의 수출 실적은 '1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0억 원이 넘었습니다.

    섬유나 봉제업 등이 대다수였는데요, 노동집약적인 산업들이죠.

    공단 사업체의 표어 가운데는, "노동력 70%, 기계 30%"라는 말까지 있었다는데요.

    노동력이 중요하다는 말이겠지만, 노동자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벌집촌에서 사는 등 이들의 거주환경은 열악했습니다.

    구로공단은 값싼 노동력으로 국내산업을 이끌어갔는데요,

    1978년에는 11만 4천 명까지 근로자 수가 늘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도, 노동자들의 삶이 크게 나아지지 않으면서, 구로공단은 노동운동의 중심이 되기도 했는데요.

    오일쇼크로 공단 전체가 침체되면서, 1970년대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또 제조업체들의 해외 이전도 크게 늘었는데요.

    1987년, 4개사에 불과했던 게 1990년대 들면서 30여 개사가 구로 공단을 떠나면서, 구로 공단에도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구로공단이 암흑 시기를 넘어, 지금의 최첨단 'IT 산업단지'로 바뀌는 시기는 바로 '1999' 년인데요,

    비제조업도 산업단지에 들어오도록 하면서, IT 기업이 구로공단에 대거 들어오게 되고, 2000년에는 서울디지털 산업단지로, 아예 명칭까지 바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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