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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붕괴 20년…부실했던 안전관리, 예견된 참사

성수대교 붕괴 20년…부실했던 안전관리, 예견된 참사
입력 2014-10-21 18:09 | 수정 2014-10-2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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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20년 전 오늘 아침, 참 비극적이고, 어처구니없는 대형 인재가 발생했었죠.

    성수대교 붕괴 사고, 기억하시나요?

    다리의 상판이 떨어져 나가면서 승용차와 버스가 함께 추락했던 대형참사였는데요.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더 안전해졌을까요?

    오늘 이브닝 이슈에서 이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사고 현장에서는 피해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열렸다고 하는데요, 함께 보겠습니다.

    ◀ 리포트 ▶

    학생 9명을 포함해 32명이 목숨을 잃고, 17명이 다친 성수대교붕괴 사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새로 지은 성수대교 북단엔 위령비가 서 있습니다.

    그곳에서 20년 전 오늘 있었던 아픈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위령제가 열렸습니다.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과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 김양수/유가족 ▶
    "그때 아침에 출근길에 연락이 왔는데 성수대교가 무너져 가지고 막내동생인데 동생이 영안실에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너무나 끔찍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한동안은 성수대교를 지나지 못했습니다."

    경찰 승합차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했던 이경재 씨.

    ◀ 이경재/당시 의경 ▶
    "경찰의 날이라 표창 가는 길이었습니다. 성수대교를 막 올라와서 다리를 건너는 순간, 순식간에 다리 상판하고 같이 추락했었거든요. 깨어났을 때는 온 사방에 비명 소리밖에 안 들렸어요."

    스무살 남짓의 의경에서 이제 마흔 살이 넘었지만 20년 전 오늘은 계속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 이경재/당시 의경 ▶
    "최근 판교 사건도 있고 세월호 사건도 있고...다 어른들이 저지른 일 아닙니까. 어른들이 하는 게 아직까지 계속 큰 인재로 이어지네요. 아직 바뀐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대형참사 없는 더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은 그때나 지금이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 황인옥/유가족 ▶
    "20년 세월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딴 사람이라도 안전해야 할 것 아닙니까. 교훈 삼아 정부에서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20년 전 성수대교가 붕괴 되던 순간은 아침 출근길이었습니다.

    다리가 무너지면서, 시내버스도 함께 추락했었는데요,

    등굣길 학생들을 포함해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습니다.

    당시 상황,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지난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8분.

    비가 내리고 있는 출근길,

    평소와 마찬가지로, 등굣길 학생들이 탄 차량들이 성수대교 위를 달렸습니다.

    [성수대교 상판 붕괴]

    "정말로 믿기 어려운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리 북단 다섯 번째 교각 상판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가던 경찰 승합차와 승용차 3대가 강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학생들이 탄 버스마저 추락했습니다.

    [성수대교 상판 붕괴]

    "뒷바퀴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16번 시내버스가 안타깝게도 끝내 뒤집히면서 20미터 아래로 흉한 몰골로 물에 떠 있던 상판 위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폭격을 맞은 듯 교각 상판은 잘려나갔고, 차체는 찌그러진 채 사고 당시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출근길 날벼락]

    "출근길의 극심한 혼잡으로 응급차량이 빨리 빠져나가지 못해 긴급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또 다른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사고가 난 지 30분이 지나서야 구조헬기가 도착했다며 당국의 늑장 출동을 원망했습니다."

    32명이 출근길에 목숨을 잃었고, 17명이 다쳤습니다.

    사망자 가운데는 이른 아침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탔던 무학여중고 학생 9명도 있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로 무학여중고 학생들 9명 사망]

    "오늘 아침 버스를 탄 것이 마지막 등굣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제시간에 도착해 앉아있어야 할 자리에는 주인을 잃은 빈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친구의 죽음 앞에 학생들은, 그리고 시민들은 오열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로 희생된 학생, 교사의 영결식]

    "한 소녀가 친구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읽었지만 결국 끝을 맺지 못했습니다."

    "교실의 자리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도 자리 잡고 있는 너의 자리를 알 수 있었고 우리의 이 슬픔을 전할 수만 있다면…지현아, 넌 우리의 소중한 친구야"

    "늘 웃는 얼굴로 제자들을 대했던 스승, 유난히도 강아지 인형을 좋아했던 딸, 그리고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가족들에게는 내색조차 안 했던 남편. 모두가 지금 곁에 있어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슬픔보다는 분노가 더 컸지만 누구를 향해 터뜨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 앵커 ▶

    그럼 20년 전 오늘, 성수대교에서는 왜 이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을까요?

    당시 성수대교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사고가 난 곳은 성수대교의 5번째 교각이었는데요.

    검찰의 조사 결과, 다리 상판을 받치고 있는 구조물의 이음새 용접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연결핀 등도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실시공' 때문에,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가 일어났던 거죠.

    그런데 성수대교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여러 차례 이상 징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국은 이런 징후를 무시했고 결국 대형참사로 이어졌는데요.

    당시 보도 내용,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성수대교는 무너지기 전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목격자들의 진술, "예견된 사고였다"]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성수대교는 이미 어젯밤을 넘기면서부터 이상이 생겼습니다. 상판을 연결하는 이음새의 틈이 점점 커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 이인규 ▶
    "시간은 한 2시 반이었고요 연결 부위에 네 번째 벼랑쯤 되는데요. 거기에 간격이 딴 데 간격보다 조금 다르더라고요. 간격이 틀린 게 이상하게 크고 거기 막 지나가자마자 철판을 상판 위에다 덮어놨더라고요"

    여러 차례 안전 점검이 있었지만 사고를 막진 못했습니다.

    [목격자들의 진술, "예견된 사고였다."]

    "오늘 사고가 난 성수대교만 하더라도 지난해 12월과 올 8월 2차례에 걸쳐 안전점검을 실시했지만 결과는 어처구니없게도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한강 교량의 안전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위험 경고했는데도 무방비]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에 걸쳐 문화방송 카메라 출동팀은 한강 교량 문제점을 집중보도했습니다. 내용은 한남 대교와 오늘 붕괴된 성수대교를 포함한 11개 교량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검찰의 현장 검증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검찰 현장검증 실시 "이미 내정된 붕괴"]

    "현장 검증 결과, 다리 밑 부분을 이루는 트러스트가 제대로 연결 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렇게 느슨한 상태로 그동안 수많은 차들의 무게를 견뎌 온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는 것이 현장 검증 팀의 이야기입니다."

    49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성수대교 사고, 명백한 인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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