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아들 (1990)]
"나 김두한은 조선의 의로운 협객으로써 그대 마루오까 경부와 정정당당히 한판 붙고 싶소. 그러니 순사들을 물리시오."
[단성사 단독 개봉…시리즈 흥행]
[서편제 (199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한국 영화 최초…서울 100만 관객 돌파]
[최고 흥행작의 산실]
[단성사의 추억]
◀ 앵커 ▶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영화관이죠.
서울 종로 3가에 위치한 단성사가 경매에 나온 지 2년 7개월 만에 마침내 팔렸습니다.
단성사는 한때 영화관의 메카이자,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많았던 곳인데요, 먼저, 추억이 된 단성사의 옛 모습,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인 '단성사'는, 지난 1907년 종로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상황에서도 한국인이 최초로 제작한 영화 <의리적 구토>를 상영했고, 자체 촬영팀을 두고 <장화홍련전>을 제작학기도 했습니다.
1926년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을 상영하는 등 단성사는 한국영화사에서 대들보 같은 존재였습니다.
1980년대에는 외화 전문관으로 명성을 얻었는데요.
외국 배우들의 팬 사인회는 으레 단성사 앞에서 해야 분위기가 살았고, 한 때 심야극장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암표상이 극성을 부리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뉴스데스크 보도 (1987년)]
"극장 매표소에서 2천 원 내지 3천 원하는 입장권이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4천 원과 5천 원씩에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데도…"
1990년대에는 단성사에서 한국영화의 흥행기록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겨울여자>, <장군의 아들> 같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들은 단성사에서 단독으로 상영됐습니다.
[뉴스데스크 보도 (1990년)]
"이 영화는 이로써 지난 77년 개봉됐던 겨울여자를 물리치고 우리나라 영화 70년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습니다."
[관객 (1990년 당시 인터뷰)]
"우리나라 영화치고 좀 액션이 좋은 것 같았어요."
[관객 (1990년 당시 인터뷰)]
"생각하지 못했던 저희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해준 것 같아요. 재미있었어요."
1993년 개봉한 <서편제>는 194일이라는 개봉관 최장 상영기록을 세웠는데요.
서울에서만 관객 1백만 명을 돌파해 흥행기록을 새로 썼는데, 당시 서편제를 보기 위한 발걸음이 종로까지 줄을 서기도 했죠.
단성사에서의 인기는 전국 흥행 보증 수표로 통할 만큼 단성사는 한국영화의 산 증인이었습니다.
◀ 앵커 ▶
올해로 109년의 역사를 가진 단성사는 명실공히 한국영화의 산실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됐는데요.
단성사의 현재는 어떤 모습인지, 김대호, 유선경 두 아나운서가, 정리해드립니다.
◀ 김대호 아나운서 ▶
한국 근현대 영화의 대표공간이었던 단성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지난 1998년, CGV 강변점이 문을 열게 되고, 그 이후부터 '멀티플렉스' 즉, '복합상영관' 문화가 확산되면서, 국내 영화산업은 급격히 변해왔습니다.
결국 2001년, 단성사는 옛 건물을 헐고, 신축공사를 단행하게 됩니다.
이후 단성사는 지상 10층에 지하 4층 규모로, 7개의 상영관을 갖춘 복합상영관으로 변신하는데요.
하지만 관객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지난 2008년, 부도 처리됐습니다.
이후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보석 전문상가로 다시 태어났지만, 경기 침체로 상가분양에 실패하면서 단성사는 경매로 넘어가게 됐는데요.
세 번의 경매에서 모두 유찰됐다, 어제 있었던 경매 법정에서 감정가의 60%인 575억 원에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유선경 아나운서, 이처럼 복합상영관에 밀려 문을 닫는 상영관 한 개짜리 영화관이 꽤 있다죠?
◀ 유선경 아나운서 ▶
네, 그렇습니다. 단성사나 피카디리 등 상영관이 하나인 '단관 극장'이 영화계를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은 단관극장하면 경기 동두천의 '동광극장', 서울 서대문의 '청춘극장'처럼 몇 군데 남아 있지 않은데요.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예술영화 전용관을 제외한 단관극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 11곳이 남아 있습니다.
CGV 950관, 롯데시네마 730관 등 대형영화관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인데요,
최근에는 대형 복합상영관이 중소도시로까지 진출하면서 이처럼 상영관이 단 하나인 영화관이 운영난을 겪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 앵커 ▶
저도 단성사에서 영화를 많이 봤던 기억이 있는데요,
우리 시민들은 단성사의 옛 모습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 추억하고 있을까요?
저희 취재진이 시민들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 리포트 ▶
[이하행]
"외국영화 들어오면 계속 봤지, 단성사랑 피카디리 극장 둘이 경쟁이 되서 다른 데는 이제 별로 (인기가) 없었어(요)."
[신종태]
"(명절 때면 단성사에 사람이 많아서) 보통 한 50-100미터 줄을 서서 아침부터 기다리고 했어요."
[박철]
"당시에는 (단성사가) 일류극장이었으니까…개봉박두 하면 그게 기다려지고 유명한 영화가 들어온다 하면 며칠 전부터 마음 설레면서 기다리고 있었죠. (단성사가) 팔렸다는 것이 조금 섭하죠. 지금까지 몇 년간 상영이 안 되고 빈 건물로 있으니까 도심지에 앙상하게 남아있으니까 좀 좋지 않은 기분이죠."
◀ 앵커 ▶
수십년 전에 개봉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널리 사랑받았던 명작들, 이런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궁금한 분들도 있을 텐데요.
최근에는 옛 명작들을 복원해 재개봉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1960년에 개봉해, 관객 22만 명을 끌어들였던 당대 최고의 흥행작 '하녀', 1970년대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대부'에 이르기까지 개봉한 지 4,50년 된 옛 명작들이 다시 은막에 걸리면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수십 년 전의 필름 영화를 개봉 당시보다 더 선명한 화질로 되살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디지털 복원 기술' 덕분입니다.
['디지털 새단장' 다시 돌아온 추억의 영화는?]
필름으로 찍은 1997년 영화 '접속'을 디지털화해봤습니다.
먼저 필름에 붙어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세척된 필름을 디지털 스캐너에 넣고 돌리면, 초당 24장의 프레임 하나하나가 그림 파일로 전환됩니다.
이걸 한장 한장 보정해서 원색을 재현하는데, 전도연 목에 생긴 하얀 점이나, 한석규 머리카락에 생긴 스크래치도 지워냅니다.
디지털 복원을 하며, 국내 개봉 당시 삭제되거나 모자이크 처리됐던 부분까지 되살리는 경우도 있어 옛 명작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앵커 ▶
이런 옛 명작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실버 영화관'과 '한국영상자료원'인데요.
함께 가 보시죠.
◀ 리포트 ▶
낡은 영사기가 돌아가는 '허리우드 클래식' 극장.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이 영화관은 주로 옛 명작들을 상영하는데요.
오늘은 1960년에 개봉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가 스크린을 가득 채웠습니다.
지난 2009년 '실버 영화관'으로 재개관한 이 극장은 누적 관객 1백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정덕]
"세월이 흘러서 우리가 나이도 먹고 하지만 옛날 영화를 봤을 때는 또 옛날로 다시 돌아간 것 같고 젊었을 때 마음이 들죠."
[김창진]
"(옛날에) 돈 없으니까 못 본 것 있고 그렇잖아. 나이가 먹고 나서 보니까 좋아. 이런 영화관이 또 다른 데가 있었으면 좋겠어."
55세 이상 어르신에게는 영화 티켓을 2천 원에 판매하고 있는데요.
[김은주 대표/허리우드 클래식]
"어르신들은 추억을 먹고 사는데요, 옛날 추억의 배우, 옛날 추억의 감독, 옛날 추억에 친구들과 봤던 기억들이 지금 다시 화면에서보여진다면 훨씬 더 즐겁겠죠."
서울 상암동 MBC 신사옥 앞에 위치한 한국 영상자료원에서도 고전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요.
다음 달 26일까지 우리 영화의 역사를 돌아보는 '한국영화 대표작 100선 기획전'도 열리고 있습니다.
이브닝뉴스
[이브닝 이슈] 한국 최초 영화관 '단성사' 경매 낙찰
[이브닝 이슈] 한국 최초 영화관 '단성사' 경매 낙찰
입력
2015-03-13 18:03
|
수정 2015-03-14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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