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최근 아파트의 이름을 놓고 분쟁이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대형 건설사의 유명 브랜드를 단 아파트가 평판도 좋고, 시세도 높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데요.
먼저, 관련 보도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올 11월 입주를 앞두고 있는 위례 신도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어느 건설사가 지은 건지, 아파트 이름은 뭔지 표시돼 있지 않습니다.
비슷하게 공정이 진행된 다른 아파트들이 커다랗게 브랜드를 써넣은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 아파트는 현대엠코가 분양한 '엠코타운'입니다.
그런데 작년 1월, 현대엠코가 현대엔지니어링에 흡수합병된다고 발표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앞으로 분양할 아파트엔 엠코 대신 모회사인 현대건설 브랜드 '힐스테이트'를 쓰기로 했고, 그렇게 되면서 자동적으로 이곳이 엠코라는 이름을 쓰는 마지막 아파트가 된 겁니다.
[한인백/현대 엠코타운 입주예정]
"당시에는 그 브랜드가 계속 쭉 앞으로도 10년, 20년 계속 사용하고 브랜드 가치가 점점 높아질 거라고 생각을 하고 분양을 받았거든요. 앞으로 입주할 아파트가 그냥 마지막 브랜드로 사용될 거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최근엔 공공분양한 아파트들도 LH나 지방 공사 등의 흔적을 지우고 시공사인 민간건설사의 브랜드로 이름을 바꾸는 게 추세입니다.
서울 강남의 한 래미안 아파트.
원래 SH 공사에서 분양한 곳이지만, 시공사가 삼성물산이라는 점을 들어 올 초 '래미안'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러자 인근의 기존 래미안 주민들이 '해당지역 유일한 래미안'이란 이점을 뺐겼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앙금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
"저기는 원래 자곡 브랜드라고 해서 분양가가 1600만 원 수준인데 여기 같은 경우는 2100만 원에서 2200…"
[○○○]
"어느 날 오니까 가짜 래미안 해가지고, 저쪽(구 자곡포레) 에서는 SH 붙이겠어요? 당연히 안붙이지. 여기(기존 래미안)는 붙이길 원하지."
◀ 앵커 ▶
최근에는 아파트 이름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이름 자체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관련 보도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이번 정류장은 DMC 래미안 e편한세상 요진아파트입니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재개발된 한 아파트 단지의 이름과 인근 아파트 이름이 들어간 버스 정류장입니다.
글자수만 해도 모두 16글자.
[오성운(27)]
"이름이 길다 보니까 처음 오는 사람에게 어디 정류장에서 내리라고 하기가 줄이기도 힘들고 해서 그런 부분이 좀 불편한 거 같아요."
아파트 단지명에 행정동명인 북가좌동 대신 근처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디지털 미디어 시티의 영문약자를 넣었고, 두 건설업체 브랜드를 그대로 넣었습니다.
본래 이 아파트 단지는 '가재울 래미안 이편한세상'이었지만, 주민들이 입주한 뒤 인지도가 높은 '디지털미디어시티'로 바꾼 겁니다.
[강성록/공인중개사]
"자기의 브랜드에 DMC라고 붙이니까 가까운 느낌도 들고 사람들이 외부에서 봤을 때 DMC 옆에 있는 좋은 아파트구나…"
올 10월에 입주예정인 인근의 또 다른 아파트 단지 역시, 디지털미디어시티에 건설사 브랜드를 넣어 'DMC 파크뷰자이'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개발 조합에서 별도의 브랜드를 내놓자, 입주 예정자들이 반발하면서 단지명을 투표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 유선경 아나운서 ▶
실제로 아파트 이름을 가지고 살펴보면, 1980년대엔 평균 3글자였는데 2천년들어 여섯 글자로 늘어났다 2010년 이후엔 평균 8글자로 늘었습니다.
한 부동산 중개 업체가 전국의 1만 6천여 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국에서 가장 긴 아파트 이름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아파트였는데요.
아파트의 이름이 열아홉 글자나 됩니다.
특히, 과거에는 지역 명칭에 브랜드를 붙였다면, 요즘에는 단지의 특징을 강조한 별명을 붙이는 게 유행입니다.
예를 들어, 00리버포레는 강과 숲이 있다는 뜻이고요.
00 첼리투스는 '하늘로부터'라는 라틴어를 써서 인근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파트 이름이 길어지는 이유, 이번에는 부동산 업계의 설명, 들어보겠습니다.
◀ 리포트 ▶
[김은진 팀장/부동산 114 리서치센터]
"과거에 사이버 라든가 e 뭐 이런 것들이 강조 되다가 최근에는 힐링 이런 것들, 아니면 쾌적성 이런 것들이 부각되면서 자연가치들을 중시하는…교육에 특화된 지역이면 에듀라는 별칭을 붙이던가…예컨대 센트럴이라든가 리버, 파크 이런 브랜드의 입지 특장점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을 하면서 아파트 이름이 더욱 길어지고 있는 추세고요. 대단지 건설 현장에서는 컨소시움 형태로 시공에 들어가기 때문에 두 개 이상의 브랜드가 같이 사용이 되면서…"
◀ 앵커 ▶
아파트 이름뿐 아니라 지하철이나 기차역 이름을 놓고도 마찰이 생기고 잡음도 커지고 있습니다.
역 이름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사례들,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유선경 아나운서가 전해드립니다.
◀ 유선경 아나운서 ▶
지난 3월에 개통된 9호선 '봉은사역',
지하철 역 이름을 불교 시설의 이름으로 정한 것은 종교 편향적이라며 일부 기독교 단체들은 '봉은사역' 대신 '코엑스역'으로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하철 8호선의 '장지역'은 '장지'가 묫자리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근처 쇼핑몰의 이름으로, 또 '문정역'은 근처 상권인 '문정 로데오거리'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문정 로데오'로 역 이름을 바꾸자는 민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경부선 '조치원역'의 경우, 1905년 개통된 전통 있는 역인데요.
'조치원역'을 '세종역'으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세종시는 시민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해 역 이름을 바꿀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해 김포공항이 행정구역상 서울에 있는데도 예전 행정구역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면서 서울공항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국토부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역 이름이 지역 이미지를 나타내다 보니, 지역 상권이나 집값에도 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역 이름을 돈을 받고 파는 경우가 나오고 있죠.
돈을 낸 학교나 기업 등의 이름을 괄호 안에 함께 표기하는 건데요,
한국철도공사와 인천과 대구 지하철이 시행하고 있는데, 서울시에서도 올 하반기에 시범적으로 실시할 예정입니다.
역 이름당 3000만 원, 올해 말까지 10개 지하철 역의 이름을 대상으로 실시한다고 합니다.
◀ 앵커 ▶
잠실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주소에서 '석촌호수'를 빼고 '잠실로'로 도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렇게 도로 이름이 바뀐 곳이 지난 3년간 2백 군데가 넘는데요.
관련 보도 내용, 함께 보겠습니다.
◀ 리포트 ▶
서울 대치동의 한 아파트단지.
아파트 주 출입구가 남부순환로로 나있어 도로명 주소는 남부순환로가 됐지만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해 최근 '삼성로'로 주소가 바뀌었습니다.
[어용순 (59살)]
"강남구 안 살아도 삼성로 하면 이쪽에 사는구나. 주소를 얼른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도로명주소는 주민 20%가 발의해 절반이 동의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최근 3년간 전국에서 2백6곳의 주소가 변경됐습니다.
집값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강남 등 특정 지역을 연상시키는 이름으로 아파트 주소를 바꾸기도 하고 에메랄드로처럼 지역 위치를 전혀 알 수 없거나 해당 주민들이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개명한 경우도 1백 건이 넘었습니다.
고분처럼 부정적 어감 때문에 주소를 바꾼 경우도 11건이나 됐습니다.
심지어 맞춤법이 틀려서 개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 앵커 ▶
아파트 이름이나 도로명 뿐 아니라 익숙했던 회사의 이름이나 제품의 이름도 어느새 바뀌곤 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상품의 이름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열심히 뛰었을 텐데, 왜 갑자기 이름을 바꾸려고 할까요?
유선경 아나운서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 유선경 아나운서 ▶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호를 바꾼 회사는 68개에 달합니다.
상장 법인이 이름을 바꾼 이유로는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가 전체의 절반을 넘었습니다. (56%),
또 '사업 영역을 확대'하거나(17%), '기업을 합병'한 경우가 (12%) 그 뒤를 이었는데요.
결국 기업이 새로운 이미지를 얻기 위해 선택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이름을 바꾸는 거라는 겁니다.
소비자들에게 오랜 기간 사랑을 받으며 장수한 제품도 새 출발을 위해 기존의 이름을 포기하기도 하는데요.
국내 최고급 세단의 대표주자였던 현대 '에쿠스'의 경우, 최근 수입차에 밀려 고전하다 보니, 10년 이상 써왔던 차 이름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관련 보도,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지난 99년 출시된 이후 에쿠스는 다양한 귀빈과 유명인들을 태우며 국내 고급세단의 대명사로 군림해왔습니다.
매년 1만 대 넘게 팔리던 에쿠스는 그러나 지난해부터 판매가 주춤하더니 올 상반기 3천400대로 줄었습니다.
반면 벤츠의 최고급 세단 S클래스는 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상반기에만 6천여 대가 팔렸고, 4000cc 이상 수입 세단 판매량도 20% 넘게 증가했습니다.
[김진우 선임연구원/한국투자증권]
"에쿠스 같은 경우는 기사가 딸려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독일의 3사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직접 운전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쪽으로 마케팅을 많이 해왔습니다."
현대차는 올 연말 내놓을 에쿠스 후속 모델에 자율주행시스템 등 최고급 사양을 갖추고 이참에 17년간 써온 '에쿠스'란 이름까지 바꾸기로 방침을 세웠습니다.
수입차의 공세를 이겨내려면 재탄생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위기감에서입니다.
이브닝뉴스
[이브닝 이슈] 이름값이 뭐기에…아파트·지하철역도 '개명 경쟁'
[이브닝 이슈] 이름값이 뭐기에…아파트·지하철역도 '개명 경쟁'
입력
2015-07-08 18:03
|
수정 2015-07-0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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