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자녀 유학을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 놓고 국내에 혼자 남아 뒷바라지하는 남편을 기러기 아빠라고 하죠.
이런 기러기 아빠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종종 뉴스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어제는 8년간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며 뒷바라지를 해온 50대 남성이 낸 이혼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먼저 그 사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부산에 사는 54살 A씨는, 지난 2006년 딸과 아내를 미국으로 보낸 뒤 이른바 '기러기 아빠'로 지냈습니다.
딸의 교육을 위해서였습니다.
A씨는 혼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생활비와 교육비를 꼬박꼬박 부쳤지만 3년여 만인 2009년 시련이 닥쳤습니다.
A씨는 "친구들에게 돈 빌리는 문제로 우울하다"는 이메일을 시작으로 '외롭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잇따라 보내며 아내에게 여러 번 귀국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내는 8천만 원을 주면 이혼에 응하겠다는 이메일을 보내와 A씨가 5천만 원을 송금하기도 했지만 여러 조건을 내세우며 한 번도 귀국하지 않았습니다.
A씨가 두 번 미국에 간 게 전부였습니다.
결국, A씨는 이혼 소송을 냈고, 법원은 오랜 별거와 의사소통 부족으로 정서적 유대감이 사라져 혼인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며 이혼 판결을 내렸습니다.
[오영두/부산가정법원 공보판사]
"아내가 남편에 대한 배려 및 동거 의무를 소홀히 한 데 무게를 두어 혼인파탄을 이유로 이혼 청구를 인용한 판결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다른 여성과 부정한 행위를 하고 있어 이혼을 요구한다고 맞섰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김대호 아나운서 ▶
'기러기 아빠'라는 말은 지난 2000년대 초 처음 등장했는데요.
1990년대 조기유학 열풍이 거세지면서, 아내와 자녀를 외국에 보내 외국에서 공부를 하게 하는 것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죠.
당시 남편이 한국에 홀로 남아 유학비와 생활비를 뒷바라지하다.
일 년에 한두 번씩 가족들에게로 날아간다고 해서 철새인 '기러기'에 빗대 붙여진 이름인데요.
지난 2002년에 국립국어원에서 신조어 사전에 등재하기도 했습니다.
'기러기 아빠', 또 '기러기 가족'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 부부가 떨어져 사는, 유례가 없는 독특한 가족형태인데요,
외국에서 한국의 교육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지난 2005년에는 미국의 유명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가 '기러기 아빠'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당시의 보도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워싱턴포스트, 한국 기러기 가족 대대적 보도]
워싱턴 포스트는 가슴 아픈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기러기가족에 대한 특집 기사를 3면에 걸쳐 실었습니다.
이 기사는 우선 좋은 공립학교가 있는 교외에 한국의 기러기가족들이 속속 유입되고 있는 상황을 보도했습니다.
대기업 중견 간부인 김 모 씨의 예를 들어 아버지들은 사회적 지위에 맞는 일자리를 미국에서 구할 수 없어 한국에 남는 상황도 소개했습니다.
이 기사는 그러나 이 같은 선택의 대가는 가족의 단절이라는 가슴 아픈 결과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 김대호 아나운서 ▶
2000년대 기러기 가족들의 자살이나 조기유학의 문제점 등이 사회문제가 됐지만, 해외유학 열풍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후반에는 기러기 아빠 시리즈가 등장할 정도였는데요,
혹시 <독수리 아빠>나 <펭귄 아빠>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독수리 아빠는 재력이 있어서 해외에 보낸 가족을 보러 마음껏 날아갈 수 있는 아버지를 뜻하고요.
펭귄 아빠는 형편이 어려워서 외국에 나가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가지도 못하고 국내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아버지들을 가리킨다고 하는데요.
'기러기 아빠'는 우리 사회의 독특한 현상으로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됐습니다.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 리포트 ▶
[영화 '날아라 펭귄']
"공항에서 빠이빠이 손 흔들고 한 번도 날아가 보지 못한 아빠가 펭귄이야."
"아침마다 환율 체크할 때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고."
아이들과 아내를 해외에 보낸 기러기 아빠, 오늘도 아이들을 위해 외로움을 참아야 한다며 힘을 내보는데요.
[영화 '우아한 세계']
영화 속 기러기 아빠들은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지곤 했습니다.
영화 <우아한 세계>의 주인공은 아내와 아이를 어렵사리 미국에 보내 가장으로의 면을 세우지만, 결국 먹고 있던 라면 그릇을 집어던지며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영화 '전설의 주먹']
"생활비 부족하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아빠 돈 잘 벌잖아. 아빠 회사에서 잘 나가잖아.알지?"
영화 <전설의 주먹>에서는 홀로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 뒷바라지하는 대기업의 40대 가장이 등장하고,
[영화 '즐거운 인생']
"야! 캐나다에 애 학비 보내는 것 장난 아니야"
영화 <즐거운 인생>에서는 유학 떠난 자녀의 뒷바라지를 위해 집도 팔아 치우고 허름한 창고에서 생활하는 처량한 기러기 아빠가 등장하는데요.
두 영화 모두 삶에 지친 기러기 아빠들이 외로움을 떨치고 자아를 찾을 수 있게 용기를 북돋아준 속 시원한 영화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 앵커 ▶
김대호 아나운서, 먼저 조기유학 추세를 살펴볼까요?
최근 들어 조기유학하는 학생이 줄고 있다고요?
◀ 김대호 아나운서 ▶
그렇습니다. 해외로 출국한 조기유학생은 2000년대 중반까지 급증했는데요.
2008년 이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기유학생이 가장 많았던 초등학생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008년, 1만 2천 명에서 재작년에는 5천 명으로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습니다.
중학생도 8천여 명에서 4천여 명으로, 고등학생은 6천 명에서 3천 명가량으로 6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최근에는 국내외 취업난에 '유턴 유학생'도 생겼는데요.
조기유학으로 해외에서 대학을 다니다 국내 대학에서 특별강좌를 수강하거나 아예 편입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인적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기업들이 유학생을 우대하지 않자, 조기유학생이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아내와 아이를 해외에 보낸 기러기 아빠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통계청에서 실시하는 인구조사를 통해 유사한 통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직업이나 학업지원, 육아 등의 문제로 부부가 떨어져 사는 가구의 숫자가 2000년대 들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견우와 직녀처럼 따로 떨어져 있는 부부, 지난 2000년 63만 가구였던 것이 10년 뒤에는 115만 가구로 두 배가량 늘어났습니다.
전체 결혼한 가구 10쌍 가운데 한 쌍인 셈인데요.
그럼 이렇게 기러기 가족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조기유학생이 줄고는 있지만 2000년대 초반 수준으로 다시 해외로 유학을 보내고 있다고 하고요.
<국내> 유학파도 있습니다.
그래서 '참새 아빠'라는 말도 생겼는데요.
가족을 외국으로 보낼 형편이 안 돼 서울 강남에 소형 오피스텔을 얻어 아내와 아이만 서울 강남으로 유학 보낸 아빠를 뜻하는데, 참새는 철새처럼 멀리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을 빗댄 말이라고 합니다.
또 최근에는 세종시가 생기면서 아이의 학교를 옮길 수 없어 기러기 가족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아졌는데요.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육아 도움을 받기 위해 아이와 엄마는 외가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만 만나는 기러기 가족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 앵커 ▶
기러기 가족들은 홀로 남은 외로움과 상실감에 건강이 상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 내용은 유선경 아나운서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유선경 아나운서 ▶
네, 2012년에 기러기 아빠들의 건강상태를 분석한 박사학위 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었는데요.
기러기 아빠 151명의 영양상태를 살펴봤더니, 4명 가운데 3명이 영양불량상태에 놓여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울감도 조사했는데요.
조사대상자의 30%가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러기 가족들은 상실감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자녀가 독립해서 나갔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외로움 등 정신적 방황을 하게 되는 '빈둥지 증후군'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 앵커 ▶
우리 사회에서 기러기 가족은 왜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인지,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와 해결방안은 없는지 저희 이브닝 취재진이 전문가에게 물어봤습니다.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Q. 기러기 가족 왜 줄지 않을까?
[김미영 소장/한국가정문제상담소]
"학벌 위주의 사회, 너무 경쟁 위주의 사회 그리고 국제화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어떤 우리 2세들에게 그런 것을 준비를 시켜야 한다는 조급함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가족이라는 가치가 돈이나 학벌이나 또는 어떤 직업 아래에 전도돼 있는 그런 어떤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Q. 가족해체 문제와 필요한 제도는?
[김미영 소장/한국가정문제상담소]
"가족 해체는 가족 모두의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자녀 유학이 부모 이혼으로 결말이 난다면 자녀의 죄책감이 깊어지고 또 자신이 열중할 수 없기 때문에 유학의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족은 자주 연락하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나눠야 되겠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간혹 우리는 덜 소중한 것을 붙잡느라고 더 소중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브닝뉴스
[이브닝 이슈] 8년 뒷바라지 '기러기아빠' "이혼청구 정당"
[이브닝 이슈] 8년 뒷바라지 '기러기아빠' "이혼청구 정당"
입력
2015-10-07 17:30
|
수정 2015-10-0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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