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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닝 이슈] 미모의 재무전문가? 잡고 보니 '리플리증후군'

[이브닝 이슈] 미모의 재무전문가? 잡고 보니 '리플리증후군'
입력 2015-10-30 17:37 | 수정 2015-10-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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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SNS를 통해 자신을 미모의 재무전문가로 소개한 한 여성이, 교수와 대기업 임원 등 남성들을 상대로 거액의 사기 행각을 벌이다 붙잡혔는데요.

    알고 보니 미모와 화려한 경력을 갖췄다는 건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이 여성은 본인이 꿈꾸던 다른 사람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리플리증후군'이라는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어떻게 된 사연인지, 보도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미모의 여성 재무전문가? 알고 보니 '리플리 증후군]

    45살 안 모 씨는 이 방 안에서 SNS에 몰두하며 스위스 국적의 국제재무사 행세를 해 왔습니다.

    국내외 연예인 사진을 마치 자신인 것처럼 올려놓고, 주로 회계사나 교수, 대기업 임원 등 '알 만한 사람'들에게 "좋은 투자처가 있다"고 접근했습니다.

    [피해자(00회사 대표)]
    "(사진에는) 굉장히 예쁜 여자로 나왔죠. (말투도) 그런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굉장히 또박또박하고 정확하게…"

    미모의 여성이 똑똑하기까지 하다고 믿은 피해자들은 실제로는 얼굴 한 번 못 본 안 씨에게 선뜻 거액을 투자했습니다.

    피해액은 3억 원에 이릅니다.

    [회계사]
    "자기가 외국인 신분으로서 주식 청약을 대신 해 주겠다. 9천만 원 정도 피해를 봤죠."

    그런데 안 씨는 경찰서에 잡혀 온 뒤에도 자신이 대단한 미모인 것처럼 말하고, 형사들에 "좋은 정보를 주겠다"고 여러 번 제의했습니다.

    [장광호/서울 송파경찰서 경제범죄수사과장]
    "프로파일러 면담 결과, 리플리 증후군은 경쟁에서 도태되었다는 불안감에 타인의 삶을 동경하고 거짓말을 반복하는 인격장애를 말합니다."

    ◀ 김대호 아나운서 ▶

    그런데 안씨와 함께 경찰에 붙잡힌 사람 중에는 다른 사기범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사기를 치기 위해 동원한 건 바로 '청와대'였는데요.

    이들은 사업가 A씨에게 접근해 자신들이 "청와대의 비밀자금 관리조직인 '창'의 비밀요원"인데, "금괴 60개를 대신 매입해주겠다"며 32억여 원을 가로챘습니다.

    일당 중에는 심지어 자신이 전직 대통령의 숨겨진 아들이라며 일본인을 상대로 1억여 원을 사기 치는가 하면, 조선 황실과 필리핀의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고 속여 투자금을 가로챈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미모의 전문직 여성으로 포장한 40대 여성 안 씨와 이들 일당의 차이점은 뭘까요?

    안 씨를 면담한 프로파일러는 안씨가 자신의 허구 신분을 믿고 있는 '리플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단순히 사기를 목적으로 청와대나 권력기관을 사칭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짜 '30대 미모의 재무설계사'인 것으로 믿고 있었다는 겁니다.

    경찰의 조사 결과, 안씨의 경력이라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작은 보습학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수학을 가르친 것뿐이었습니다.

    경찰은 안 씨가 학벌과 외모가 자신에 비해 뛰어나고 결혼까지 한 자신의 두 언니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중, 몇 년 전 사귀던 남성에게 배신당한 상처로 '리플리 증후군'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리플리 증후군'은 구체적으로 어떤 질환일까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며 마음속으로 꿈꾸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일컫는데요,

    미국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지난 1955년에 쓴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서 따온 말입니다.

    이 소설은 5년 뒤 프랑스 배우 알랭 드롱이 주연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만들어졌었고요.

    1999년엔 원작 소설과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리메이크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영화 '리플리' (1999)>

    평범한 청년 톰 리플리는 우연히 한 부호의 부탁을 받고, 대학 동창인 척 부호의 아들 디키에게 접근합니다.

    "디키니? 난 톰 리플리야. 우리는 프린스턴 대학 동창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달콤하고 화려한 거짓 삶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를 '디키'라 여기며 살인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나는 현실의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되기보단, 거짓의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게 낫다고 항상 생각했어."



    "이해해요. 길거리에서 만나서 누구의 추천도 보증도 없이…제아무리 동경대를 나왔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겠죠."

    "동경대 출신인가요?

    호텔 취직을 위해 만들어낸 사소한 거짓말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면서, 주인공은 스스로를 부정하기에 이릅니다.

    "네가 거짓으로 지어낸 세상에서 사는 게 행복하냐고."

    "그 거짓말 다 진짜로 만들어버리면 되니까. 너만 모른 체 해주면 되잖아. 너만 조용히 해주면 난 동경대생이고 화려한 호텔리어야."

    <영화 '화차'(2012)>

    사랑했던 약혼녀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고, 주인공은 연인의 정체에 대해 혼란에 빠집니다.

    "휴게소에서 갑자기 얘가 없어진 거야. 형 얘가 선영이야, 강선영. 근데 얘를 찾아보니까 얘가 선영이가 아니래."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지문도 없다…이 여자가 강선영을 의도적으로 사칭해서 살아 왔다는 거지. 돌아올 생각이 없다는 거지."

    영화 '화차'는 사채빚의 굴레에 빠져 다른 여성의 삶을 빼앗은 한 여성의 비극적인 결말을 그렸습니다.

    ◀ 앵커 ▶

    그런데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는데요,

    30여 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짜 서울대 법대생 사건', 기억하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져 큰 화제가 됐었는데요, 김대호 아나운서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 김대호 아나운서 ▶

    지난 1983년 보도된 '가짜 서울법대생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는데요,

    이 사건의 주인공은 3년 전인 지난 2012년, 회삿돈 2백억 원을 빼내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검거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1980년대 초 서울대 법학과 복학생 모임에 참여하며 강의를 듣는 것은 물론이고, 과대표까지 지내며 4년 동안 감쪽같이 주위를 속여왔습니다.

    심지어 결혼식 주례도 서울대 법대 교수가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김씨의 이런 거짓말은 졸업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로 났습니다.

    하지만 신분이 들통난 이후에도 서울대 법대생 행세를 하며 가정교사를 하는가 하면, 검찰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하는 등 기이한 행태를 보여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6월에는 미국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여학생이 미국 제일의 명문대인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 동시에 입학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전례 없는 대학 동시 진학 소식에, 소녀의 재능에 놀란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는 얘기까지 전해지면서 이 소녀는 일약 '천재 수학소녀'로 대서특필됐는데요.

    하지만 언론 취재 결과, 이 모두가 학생의 거짓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 채 거짓말을 꾸며내다, 대학의 입학허가서까지 위조했던 것이었는데요.

    이 학생은 결국 학업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음대생으로 살고 싶었던 30대 임신부의 사연도 전해졌죠.

    32살 김모씨는 중학생 때 괌 여객기 추락사고로 아버지와 오빠가 숨진 데 이어, 결혼 후 임신한 몸으로 이혼해 또다시 가족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었던 여성은 몇 년 전 우연히 주워서 갖고 있던 음대생 이모씨의 학생증을 이용하기로 했는데요.

    운전면허증과 여권을 이씨의 명의로 새로 발급받고, 은행계좌 등에 연결된 체크카드를 발급받고 대출까지 받았다 결국 경찰에 덜미가 붙잡혔습니다.

    여성은 경찰에서 "어렸을 때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음대생 이씨의 삶이 너무 행복해 보여 새 삶을 살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법원은 이 여성에 대해 사기와 사문서 위조.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 앵커 ▶

    개인의 단순한 거짓말로 끝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런 행각이 결국엔 다른 사람에게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주기도 하는데요.

    다른 사람으로 살다가 결국 사기범으로 전락한 사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보도 내용,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꼴찌에서 삼성맨' 청년멘토, 알고 보니 거짓말]

    28살 김 모 씨가 지난해 펴낸 자서전입니다.

    김 씨는 이 책에서 실업계 고교 출신인 자신이 연세대에 들어가 삼성 SDS에 특채되기까지의 과정을 적었습니다.

    책을 펴내기 전에도 김씨는 유력 일간지를 통해 성공담을 알리고, '청년 멘토'를 자처하며 대학을 돌며 강연을 했습니다.

    하지만 김씨의 화려한 인생 스토리는 대부분 거짓이었습니다.

    5년 전 연세대 원주 캠퍼스에 편입한 김씨는 삼성에 특채되기는커녕, 아직 학부 졸업도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삼성 SDS 관계자]
    "우리 회사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출판사에 얘기했고요) 작년에 저희 회사 사칭 안 하겠다는 각서를 썼고…"

    출판사는 자신들도 속았다며 출간 보름 만에 책을 모두 회수했습니다.

    하지만 김씨는 거짓이 들통난 뒤에도 포털사이트에 학력을 연세대 MBA라고 올리며 계속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행세했습니다.

    [연세대 관계자]
    "다 거짓인 거죠…MBA라는 게 학사 과정 학생이 거길 어떻게 들어가겠습니까?"

    ['의사이자 재벌가 며느리' 거짓 인생 살아온 주부]

    지난 2011년 대학병원 의사인 것처럼 속여 결혼에 성공한 박 모 씨.

    남편에게 소개한 가족과 친구는 대부분 박 씨가 고용한 대역들이었습니다.

    고급 외제 승용차와 장신구로 치장하고 씀씀이가 헤펐던 그녀를 의심하게 된 건 결혼 3년차 때부터.

    박 씨는 채권투자를 통해 재산을 불려주겠다며 시누이와 가정부, 심지어 건물 경비원들로부터 수천에서 수억 원을 투자받아 자신의 사기행각을 이어갔습니다.

    이렇게 가로챈 금액만 약 7억 원.

    사기혐의로 고소된 박 씨를 검찰은 어린 딸을 양육해야 하는 점을 배려해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겼지만, 그 사이 또다시 2억여 원을 비슷한 수법으로 가로챈 사실이 들통나 끝내 구속됐습니다.

    ◀ 앵커 ▶

    전문가들은 리플리 증후군을 일종의 성격장애로 보고 있는데요.

    최근 들어 리플리 증후군이 많이 관찰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 리포트 ▶

    Q. 신분 사칭 사기와 리플리증후군, 다른 점은?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일반 사기범 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어떤 정체성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목적하는 금전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적 거짓말을 하는 데 비해서, 리플리 증후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상당한 부분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범행 수법과 연관된 부분만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죠. 스스로에 대한 이제 과대망상적인 이런 이제 생각들을 하는 것이 가장 특이점이라고 보이고요."

    Q. 리플리증후군이 계속 나타나는 이유는?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
    "학력은 굉장히 높지만 사회적 지위가 따라오지 않는 젊은이들 중에는 자기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성취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 괴리를 일종의 망상처럼 그렇게 잘못된 믿음으로 채우는 그런 이제 경우들이 있어서 최근에는 지금 이런 증세를 가진 사람들의 숫자가 좀 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들을 해볼 수가 있죠."

    ◀ 앵커 ▶

    최근 카톡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면서 다른 사람의 명의나 사진을 도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데요.

    온라인이다 보니 더 쉽게 자신을 감추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 건데, 당사자들은 단순히 재미로, 또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고 했다지만, 명의를 도용당한 사람들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신분을 훔친 사람들을 처벌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는데요.

    보도내용 함께 보겠습니다.

    ◀ 리포트 ▶

    [남의 인생을 훔친 사람들, SNS 계정도용 심각]

    지난 6월 한 스마트폰 채팅 사이트.

    강아지가 구토하는 사진과 함께 '일주일을 굶겼더니 막걸리 마시고 난리'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른바 '개막걸리녀'라고 불리며 글쓴 사람의 신상이 공개됐고, 네티즌의 비난이 폭주했습니다.

    그런데 사진 속 여성을 직접 만나보니 개를 키우지도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진을 도용당한 겁니다.

    [심00/SNS 도용 피해자]
    "진짜 듣기도 민망할 정도의 욕이나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써놓는데…도용당한 사람이다, 너무 억울하다 (얘기해도) 진실은 들어주는 사람 하나도 없고…"

    정작 사진을 도용한 여성은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조00/SNS 도용]
    "채팅 사이트에 예쁜 여자 사진 올리면 막 관심 가져주잖아요, 예쁘다고. 그래서 그냥 잠시 장난으로 한 거예요."

    대학생 박슬기 씨는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SNS에서 자신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박슬기/SNS 도용 피해자]
    "사진부터 글까지 다 똑같이 올려요. 거의 뭐 나 오늘 어디 갔다 왔어. 제가 이렇게 올리면요. 진짜 그게 다음 날이면 올라가 있어요. 그냥 제 삶을 살고 있어요, 온라인에서."

    슬기 씨를 사칭해온 사람은 뜻밖에도 남자 고등학생이었습니다.

    [OOO/SNS 도용]
    "너희 누나 예쁘다 하면서 (친구들이) 좀 더 다가오니까…댓글 같은 걸로 칭찬도 해주고 그런 거 쓰면 왠지 나한테 칭찬해주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이런 SNS 신상도용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처벌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경찰 관계자]
    "한마디로 민사 사건이에요. 단순히 사칭만 하는 경우에는 우리 법에서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민사소송도 경찰 수사 없이 도용한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피해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아 어렵습니다.

    SNS가 나를 드러내는 일종의 신분증으로 이용되는 시대.

    인터넷 공간에서의 사칭도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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