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휴가나온 군인이 신혼집에 침입해 예비 신부를 살해하고, 약혼남과의 격투 끝에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경찰이 이 군인을 살해한 예비신랑의 정당방위를 인정했습니다.
수사기관이 살인 피의자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한 건 지난 1990년 이후 25년 만의 일인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정당방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박윤수 기자의 보도입니다.
◀ 리포트 ▶
지난 9월 24일 새벽 5시 28분. 휴가 중이던 20살 장 모 상병은 술에 취해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한 주택에 침입했습니다.
장 상병은 주방에서 흉기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잠자고 있던 33살 박 모 씨를 살해했습니다.
옆 방에서 잠자던 박씨의 약혼남 36살 양모씨는 박 씨의 비명소리에 놀라 방에서 나왔고 몸싸움을 벌인 끝에 장씨를 살해했습니다.
사건 발생 77일 만에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양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했습니다.
경찰은 장 상병이 박씨를 살해한 뒤 양씨를 위협했고, 양씨가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는 점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양씨가 장 상병은 물론 약혼녀인 박씨까지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언론의 의혹 제기에 대해선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했습니다.
디지털 증거 분석과 부검 등을 통해 숨진 박씨의 손톱에서 장 상병의 DNA가 검출된 반면, 양씨의 DNA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수사 기관이 살인 피의자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한 것은 1990년 경북에서 애인을 성폭행한 남성을 격투 끝에 살해한 사건 이후 25년 만입니다.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오늘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MBC뉴스 박윤수입니다.
◀ 앵커 ▶
그럼 이번 사건의 개요와 정당방위로 인정받은 근거를 이혜민 아나운서의 함께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이혜민 아나운서 ▶
지난 9월 24일,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어두컴컴한 새벽에 만취한 군인이 한 가정집으로 불쑥 들어갑니다.
이 집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가 살고 있었는데요.
군인이 집에 들어간 뒤 곧이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두 사람이 흉기에 찔려 숨졌습니다.
숨진 사람은 예비 신부와 만취한 군인이었습니다.
단 6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는데요.
예비 신랑은 다친 머리를 움켜쥔 채 집 밖으로 뛰쳐나왔고, 골목에 나와 있던 이웃들에게 구급차를 불러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사건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예비 신랑은, "술 취한 군인이 갑자기 집에 들어와 자고 있던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고, 자신에게도 흉기를 휘두르며 달려와 격투 끝에 흉기를 빼앗아 그 군인을 찔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집 안에서 벌어진 일인데다 살아남은 사람이 단 1명뿐이다 보니, 일각에선 여자를 해친 범인이 군인이 아니라 예비신랑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는데요.
이런 의혹을 불식시킬 단서가 다행히 과학수사 결과 나왔습니다.
경찰은 방에서 발견된 혈흔의 모양을 통해 예비 신부가 숨지기 직전 강하게 저항했을 것으로 추정했는데요.
국과수 감식 결과 숨진 여성의 손톱에서 숨진 군인의 DNA가 발견된 겁니다.
그리고 예비 신랑의 DNA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숨진 여성과 군인의 손에서 동일한 섬유질도 발견됐는데요.
두 사람이 강한 접촉을 통해 옷이나 이불에서 동시에 묻어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결국 '진짜 범인'은 만취한 군인인 것으로 드러난 거죠.
이렇게 범인을 가려낸 건 참 다행스런 일이지만, 문제는 살아남은 예비 신랑 역시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인데요.
경찰은 정당방위가 인정된다고 보고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수사기관이 살인 피의자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해 준 건 지난 1990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경찰은 아내가 될 여성이 숨지고 자신도 공격을 받아 다치는 등 당시의 급박한 상황과 극심했던 공포를 감안하면 정당방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앵커 ▶
그러니까 큰 고통을 받았을 피해자가 혹시 가해자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일었던 건데요.
다행히 이 의혹이 이제라도 풀리고 정당방위도 인정을 받아서 참 다행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그 잣대가 상당히 엄격한데요.
지난 25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피해자라고 해도 가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했었는데요.
남편의 살해 협박에 시달려온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사건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서울의 한 단독주택에 살던 49살 윤 모 씨.
윤씨는 지하 작업장에서 남편을 목 졸라 살해했습니다.
그녀는 25년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왔는데 남편을 살해하기 한 달 전 폭력은 더 심해졌습니다.
[김OO /딸]
"아빠가 피바다를 만들어 버리겠다고 하면서 칼을 들고 다니세요. 집에서… 그러면 저랑 제 동생은 뭐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냥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고…"
윤씨가 남편을 살해하기 사흘 전, 남편은 노끈으로 윤씨의 목을 조르다 "아직은 죽일 때가 아니다. 더 있다 죽여주겠다"며 풀어줬습니다.
[김OO/딸]
"아빠가 그렇게 잔인하게 무자비하게 행동을 해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대든 적도 없었고, 무조건 빌기만 했거든요."
사건 발생 직전, 남편은 망치로 작업장 스탠드를 깨부수며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극한의 공포 속에 윤씨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순간적으로 남편을 살해했다고 법정에서 주장했습니다.
윤씨의 딸과 변호인은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1, 2심 법원은 이혼이나 경찰에 신고하는 등 다른 방법이 있었다며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 앵커 ▶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정당방위가 인정되고 어떤 경우엔 안 되는 걸까요?
우리 법에서는 '정당방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성립 요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내용은 유선경 아나운서가 전해드립니다.
◀ 유선경 아나운서 ▶
정당방위는 형법 21조에 규정돼 있는데요.
<자기 또는 타인에 대한 '현재의 위협'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처벌하지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여기서 '현재의 위협'이란 폭행이나 협박이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을 의미합니다.
즉, 위협과 동시에 벌어진 방어가 아니라면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동시에 벌어진 방어라고 할지라도 방어 행위가 과도하게 이뤄졌을 때는 무조건 면책되는 게 아니라 상황을 보고 판단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다만, 밤시간이나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 흥분, 당황한 심리로 과한 방어를 했을 때는 벌하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도 있습니다.
형법과는 별도로 경찰의 수사지침에서도 정당방위가 성립되기 위한 '8가지 요건'을 규정하고 있는데요.
침해 행위에 방어하기 위한 행위여야 하고, 가해자를 도발해서는 안 되고, 가해자의 침해가 저지되거나 종료됐을 때는 폭력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또 가해자에게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면 안 되며, 가해자 피해가 나의 피해보다 작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해자가 나보다 더 많이 다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상치 못한 위험 상황에 처하게 됐을 때, 과연 이런 걸 모두 고려하면서 대응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시죠?
정당방위 규정이 지나치게 엄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들어보겠습니다.
◀ 리포트 ▶
[박진실(24)]
"내가 제압하지 않으면 도둑이 나를 찌를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고, 어떻게 흉기를 들고 왔는지, 도망칠 것인지 알고, 제가 "아! 가시겠습니까?" 말할 수 없는 거잖아요."
[오아라(22)]
"저한테 해를 어떻게 입힐지 모르니까,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다희(21)]
"최대한 저를 방어를 해야죠. 아무런 생각이 안들 것 같아요.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 밖에…"
◀ 앵커 ▶
이번에는 그렇다면 법원이 실제 정당방위로 인정한 사례를 알아보겠습니다.
이혜민 아나운서의 설명을 들으시면서 어떤 사례가 정당방위로 인정됐을지, 시청자 여러분도 한번 맞혀보시기 바랍니다.
◀ 이혜민 아나운서 ▶
여기 4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남동생이 자신의 친누나를 성폭행하던 남성을 때려 중상을 입힌 사건이고요,
두 번째는 자신을 성폭행하는 남성의 혀를 깨물어서 혀의 일부가 잘려나가게 한 여성의 경우입니다.
세 번째 사례는 집에 침입한 강도에게서 쇠 파이프를 빼앗아 상해를 입힌 집주인에 대한 사건이고,
네 번째 사례는 집에 침입한 도둑을 발견하고 빨래 건조대로 여러 번 내려쳐 도둑을 뇌사에 이르게 한 사건입니다.
언뜻 보면, 여기서 어떤 사건이 정당방위로 인정될지 헷갈리시죠?
네. 실제 법원의 판결을 살펴보면, 이 가운데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뿐입니다.
성폭행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시킨 두 번째 사례만 사법부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됐고요.
나머지 사례들은 모두 방어 행위가 과도했다, 즉 '과잉방어'였다고 보고 정당방위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사례의 판결에 대해서는 과연 빨래건조대를 흉기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 앵커 ▶
정당방위가 생각보다는 상당히 엄격한 잣대로 적용되는 걸 알 수 있는데요.
해외의 경우는 어떤지 알아보겠습니다.
이 내용은 유선경 아나운서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 유선경 아나운서 ▶
미국의 경우, 개인의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만큼, 정당방위에 대해서도 아주 폭넓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캐슬 독트린'이란 법이 있는데요,내가 사는 집을 캐슬, 즉 '성'에 빗댄 표현입니다.
내 집에 들어온 침입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총을 쏴 사살해도 기소할 수 없다는 법인데요,
노스캐롤라이나와 일리노이주 등 16개 주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라는 법도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느꼈을 경우 장소에 관계없이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곧바로 대항할 수 있다는, '캐슬 독트린'보다 좀 더 포괄적인 법입니다.
캘리포니아와 조지아, 인디애나와 플로리다 등 미국 26개 주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정당방위 법인데요.
지난해 백인 경찰이 무장하지 않은 10대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사건 기억하시나요?
당시 흑인 소요 사태까지 일어났었는데요, 백인 경찰은 소년의 손이 자켓 안쪽으로 향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는데, 이게 바로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에 기초한 주장입니다.
이런 미국과 달리 대만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임신한 아내를 지키려고 도둑을 제압했지만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 사건을 영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대만 타이베이의 한 주택에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도둑이 침입합니다.
그런데 불과 6분 뒤에 외출했던 집주인 부부가 돌아옵니다.
부인은 임신 8개월 상태.
해병대 출신 남편은 도둑을 제압하고, 경찰이 올 때까지 도둑의 목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식을 잃은 도둑이 결국 숨졌고 남편은 과실치사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행동이 떳떳하다고 말하고,
[보하이/집주인]
"무슨 일이 있든 가족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가족이 피해를 입도록 할 수는 없잖아요?"
숨진 도둑의 동생은 집주인을 강력히 처벌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장OO/절도범 동생]
"집주인의 행동이 과하고 잔인했다고 생각합니다. 형은 이미 싸움에서 졌는데 굳이 쇼크상태까지 내몰아야 했을까요?"
◀ 앵커 ▶
정당방위의 범위를 지금보다는 넓혀야 한다는 견해와 정당방위를 악용할 위험이 있어 안 된다는 우려가 함께 존재합니다.
의견은 분분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선량한 피해자가 가해자로 억울하게 뒤바뀌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전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브닝뉴스
[이브닝 이슈] '공릉동 살인사건' 25년 만의 정당방위 인정, 근거는?
[이브닝 이슈] '공릉동 살인사건' 25년 만의 정당방위 인정, 근거는?
입력
2015-12-09 17:38
|
수정 2015-12-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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